『이력서』의 주인공 한자와 료는 흔히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는 존재이다. 유일한 가족인 누나도 친누나가 아니라 그저 남동생이 갖고 싶단 마음에 길에서 료를 ‘주워온’ 것이고, 그에게는 이렇다 할 경력이나 학력이 전무한 것은 물론 이름과 나이마저도 진실인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누나의 말에 그가 반 장난으로 작성한 또 한 장의 이력서에는 분명히 한자와 료라는 인간이 존재하고, 그는 이력서 속 가상의 자신을 하루하루 착실하게 현실로 만들어나간다.
수수께끼 헬멧 소녀의 청에 따라 새벽마다 달밤에 체조를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유행했던 ‘호신술’ 책을 들고 진지하게 공원에서 발차기 기술을 연마하고, 누나와 야마자키 씨를 위해 앤티크 가게에서 거금을 주고 고양이 재떨이를 사오는 료의 모습은 꼭 영화 나 의 비현실적인 몽상가 주인공들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친구의 남동생과 키스하는 것이 꿈이었어”라는 야마자키 씨의 말에 료가 응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아주 짧은 한순간 지상에 현현했다가 사라지는 마법 같은 밤 시간을 영화의 한 컷처럼 소박하고도 담담하게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