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6월, 48세의 나이로 작고한 김현 선생이 1985.12.30~1989.12.12일까지 3년간의 일기다. 자신의 일기도 그렇지만 남의 일기를 엿본다는 것은 묘한 느낌이 있다.

1985년 12월 내 자신의 일기와 비교해서 읽다 보면 20여년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처럼 아련한 흥분도 된다. 왜냐하면 일기는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이자 양심이 드러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개인적 일기는 제외하고 책을 읽은 간략한 비평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일기에는 일기 나름대로의 속살에 감추어진 맛은 있다.

1990년 6월 작고했으니 그의 글은 죽음을 예감하고 더욱 솔직히 인생에 대해 살펴보는 책읽기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주어진 목숨이 앞으로 4년이라면, 아니 몇 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가장 소중하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지 않을까?

책 제목대로 이 책은 ‘행복한 책읽기’이다.

김현 선생은 죽음의 결승선을 예감하면서도 방대한 책읽기를 통해 다른 작가들의 세계관과 작품과 현실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해 낸다. 작가는 이것을 가벼움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凡人인 나로서는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그의 비평은 때론 현실을 직시하고, 때론 감성적이고, 때론 지적이고 하면서 날랜 비평의 언덕을 오르내린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불안감에서 해방되려 한다. 위대한 선동가는 그것을 이용하여 우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것을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길을 제시한다. 그 길이 축제로 변할 수 있을 때 혁명은 완성된다(19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왠지 MB정부가 떠 오른다. 참여정부의 불안감(누가 조장한 것인지는 모르지만)으로 인해 경제만 잘 된다면 하는 절절함에 불을 지핀 747공약은 혁명을 완성했지만, 선동가에 눈이 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2008.7.25) 신문에도 고소득층의 세금은 축소하고, 저소득층의 세금은 확대한다고 하니 누군가 얘기했듯 지금의 시기는 ‘무덤의 어둠이자 자궁의 어둠’이라는 것이 절절히 느껴진다. 무덤의 어둠은 죽음이지만 자궁의 어둠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준비기이기 때문이기에 어둠을 견뎌내야 한다.

다음 문장도 보면 재미있다.

레이건은 리비아를 폭격하고, 니카라과를 협박하고 있다. 그것을 교묘하게 은폐하기 위해 칠레, 한국 등의 인권을 강조한다.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대외적으로는 신식민주의를-고전적 도식이다. 미국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국익이다. 그것이 세계주의의 가면을 쓸 때, 지식인들은 멋모르고 춤춘다(24쪽). 1986년 저자의 시각은 이렇게 적확했다.

미국은 여전히 더욱 더 교묘하게 페르소나 뒤에 숨어 있지만 꼬리가 길면 밟힐 것이다.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하고,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 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 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 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신앙/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167쪽)!

그가 일기에 적은 내용이 지금 그대로 옮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문학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만이 물질이 우위에 선 지금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 정신이 부요하지 않는 한 인간의 물질 욕망은 추락하는데 날개는 없기 때문이다.

이문열의 글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일기에 적어 놓았다.

그의 글은 아무것도 주장하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러 가지 것을 강렬하게 주장하고 있다. 변경에 사는 주변인들은 원숭이, 얼치기 들에 가깝다라든가, 타산이 결국을 사랑을 이긴다라든가 하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207쪽). 김현 선생이 작품을 통해 작가를 비평하는 그 혜안이 나에게도 있게 할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어야 가능할 지 두려울 따름이다.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작가가 읽었던 책들이 지금은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인터넷 서점을 뒤져도 거의 대부분 절판이 되어 만날 수가 없다. 그가 읽고 비평한 책들을 보면서 내 천박한 책읽기를 반성할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작가의 방대하고 핵심을 건드리는 간결한 비평은 책을 읽는 동안 점점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하고, 허리를, 무릎을 낮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비평가의 가장 큰 고민은 읽어야 할 책은 너무나 많고 거기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급해지거나 게을러진다. 둘 다 좋지는 않은 태도이다(209쪽).

블로거를 통한 정보의 홍수속에서 김현과 같은 작가의 글을 찾기란 더욱 힘들어 지고 있다. 인터넷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더욱 더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한 치열한 선택이 필요한 시기이다. 물질이 점점 정신을 앞지르는 경제관련 책들이 더욱 범람할 시기에 조용히 정신을 탐구하는 작가를 찾는 지혜가 필요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