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한 편이 생활의 날로 새로운 문법이고 시집은 그 건축물이다.”
평론가 황현산, 시인 김혜순, 김정환,
시집 출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이다
2013년 7월, 문학평론가 황현산, 시인 김혜순, 김정환은 몇 해 전 신춘문예나 잡지 등단 관행의 문제점을 ‘출판사 주도로 오래 준비해 출간하는 시집 출판’이라는 새 제도로 극복하고자 뜻을 모았다. 즉, 시집 출간으로 시인을 등단 내지 재등단시키는 제도를 마련한다는 것으로, 시집 한 권 분량을 채울 50∼60편의 시를 한꺼번에 받아 살펴본 뒤 역량이 확인된 시인들의 시집을 출간하여 시집선을 채우기로 한 것이다.
이 시집은 이러한 의도에 호응해 도서출판 삼인은 등단하고 싶은 시인들에게 시집 한 권 분량의 시 원고를 통째로 투고 받아 세 간행위원의 심사를 거쳐 ‘삼인 시집선’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기로 하였다. 선정위원, 출판사가 시인과 힘을 모아 시집 출간의 새로운 통로를 마련해보자는 취지인 만큼, 투고된 시들에 대해 곧바로 당락 결정을 하기보다, 시인 한 명당 50~60편의 투고작 전체를 꼼꼼히 살피고 가능성이 돋보이는 시 원고에는 심사위원의 메모를 덧붙여 반송하고, 고쳐 온 시 원고를 다시 심사하는 수고를 들였다. 3년간 엄밀한 선정 과정을 거쳐 시집 두 권이 최종 선정된 시집이 바로,『삼인 시집선 01_연애의 책』(유진목), 『삼인 시집선 02_시』(조인선)이다.
유진목의 시집 『연애의 책』은 절제된 유머 감각이라 할 만한 것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시인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웃음의 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시로 육화하는 솜씨가 있다. 또한 이책의 연애시편들은 서로를 간구하는 연인들의 정열이 작렬하는 현장이라기보다 절정의 순간으로부터 한 걸음 앞 또는 뒤에서 그 절정을 기다리고 반추하는 공간에 가깝도록 그려낸다. 그러면서 더 근본적으로는 사랑이란 상대와의 빈틈없는 합일을 꿈꾸는 대신 상대를 놓아주고 더 자유롭게 숨쉬게 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일깨워 준다. 덕분에 우리는 연애와 시쓰기가 세상과 삶을 쓸쓸히 사랑하는 연습이자 “가망이 없더라도 희망의 용법을 구”(67)하기를 멈추지 않는 노고임을 말해주는 책, 그리고 그 증표로서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푸른 모서리」 같은 아름다운 연애시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