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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 양반전
글쓴이
박지원 저
출판사
매월당
출판일
2016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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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박지원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가 연암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실학자이자 대문장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박지원은 장인 이보천에게 《맹자孟子》를 배우고, 처숙인 이양천에게 《사기史記》를 배우며 본격적으로 학문을 시작했는데, 홍문관 교리를 지낸 이양천이 시문詩文에 뛰어나 주로 문학 면에서 연암을 지도했다고 한다.

박지원의 《연암집》은 단순히 글을 모아 놓기만 한 책이 아니라 ‘문학 창작집’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편찬되었으며, 창작에 관한 이론 또한 필요한 곳마다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방경각외전》에 실린 현전하는 일곱 작품과 더불어, 《연암집》 [연상각선본]에 실려 있는 [열녀함양박씨전], 《열하일기》에 수록된 [호질], [허생전], [하룻밤에 아홉 번 강물을 건너다[一夜九渡河記]], [통곡할 만한 자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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