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곁에서 끝내 사랑을 부르다
릴케 시집, 《두이노 비가》
《두이노 비가》에는 죽음과 영원, 사랑과 작별, 아름다움과 끔찍함, 열림과 닫힘, 무너짐과 태어남이 있다. 하지만 각각의 단어는 사실 없다. 이 시집에는 시가 없다. 시 대신 우리가 있다. 삶이 있다. 죽음이 있다. 사랑이 있다. 가냘프게, 그러나 간곡하게 부르는 소리가 있다. 스스로의 부름에 한계를 짓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소리다. 〈제1비가〉에서 〈제10가〉는 하나의 흐름이다. 하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은 흐름이다. 우리를 휩쓸어갈 흐름이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 시들을 읽어나갈 수 없다. 말할 길 없는 세계이므로. 문이 닫힌 교회 앞에서 드리는 기도처럼. 입 밖으로 나온 우리의 고백은 기도로서 태어나지 않는다. 절규로서, 비명같이 순수할 따름이다. 우린 무엇을 원하면서도 무엇도 원치 않는 상태다. 그것이 최초의 상태라면 우리에게 열린 곳은 ‘위’뿐이다. “잡을 수 없는 존재”는 그곳에 있다. “천사”도, “죽음”도, “영원”도, “연인”도 그곳에 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저 바깥은 아니다. 적어도 이 시집 안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는 사실 있다. 시가. 고요한 시다. 대신, 우리가 없고, 삶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랑이 없다. 위로 향한 것들은 끊임없이 올랐다가 떠난다. 당신과 나의 곁으로 떠난다. 우리의 곁으로. 그 곁에 있는 건 “끔찍한” 열림, 그것뿐이다. 그 열림만이 “우리를 사로잡고 위로하고 구제”한다. 사랑받음으로부터, 사랑함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