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책 중에 드물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글자도 안 빼고 정독한 책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단연 최고의 책이었다. 맨 마지막 번역자가 이렇게 말한다.

"올해 초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란 그의 책을 본 순간, 나는 모든 작품을 제쳐두고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음악은 물론이고 책에서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 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수차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만들었지만, 한 번이라도 음악이 좋지 않으면 다음에는 나에게 의뢰를 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일을 하고 있고, 매번 진검승부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위와 같은 번역자의 심정과 말이 너무도 잘 이해가 된다. 나 역시 그랬으니 말이다. 윗 문장을 읽으며 나도 잠깐 숨을 멈췄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위 문장 뿐 아니라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과 글들이 모두 그랬다. 번역자만큼이나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 책은 영화 음악을 하는 작곡가(예술가-영화음악 외에 다른 일도 많이 하고 있지만 그의 주된 작업은 영화음악이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예술가가 쓰는 글이라는 어떤 느낌으로 한정지은 다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읽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색깔있는 펜을 집어들고 처음부터 꼼꼼히 다시 읽어가기 시작했다. 내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글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음악이라는 것에 한정된 글이 아니었다. 정상에서 만난다는 말이 생각나는데 결국 일류의 자리에 간 사람으로서 뱉어내는 말들은 그냥 흘러보낼 말들이 아니었다.

또한 예술가라고 하면 상당히 직감적이고 상황과 흘러가는 운에 따라 맡겨진 인생을 살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철저했다. 그가 말하는 직감이라는 것은 5%에 불과했다. 오히려 95%는 논리적 사고의 근간이 되는 것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직감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것들에 의해 나온다는 것이다. 우연, 그리고 직감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에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예술가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 신선했다.

그리고 일류, 프로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늘 같은 최고일 수 있는 것, 음식점을 예를 들어 어떨 때는 엄청 맛있고 어떨 때는 맛이 없다면 그것은 일류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일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연습위에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

이 책의 감동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번더 읽으면서 천천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가장 좋은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 좋은 의미에서 예상을 뒤엎을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위해 평소부터 감각을 연마하고 센스를 키우는 것, 이러한 것들을 비단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가 직접 말해주지 않아도 금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책의 후반부보다 전반부가 훨씬 좋았다. 감성을 다룬 1장, 그리고 그 감성, 직감을 어떻게 연마할 수 있는지에 대한 2장이 좋았다. 특히 직감이라는 것을 이런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후반부는 가끔씩 전문 용어나 악기들이 설명될 때 약간 지루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정말 놀랍다. 감성과 논리가 이렇게 절묘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놀랍다. 감성적인듯하면서도 논리적이고 논리적인듯하면서도 감성적이다. 그의 표현 하나하나에 그의 모든 혼이 담겨진 듯하다. 저자는 감히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도전을 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는 읽는내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대입시켜서 읽었다. 그리고 도전받았다. 이토록 객관적인듯하면서도 은근히 강압적이지 않은 설득력을 맛보기는 또 오랫만이었다. 사실 저자에 대해서 그리고 저자의 영화 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책 한권만 보고도 저자의 열렬한 팬이 될 것 같다. 아니 이미 되어버렸다. 자신의 일에 최고가 되기를 원하는, 뭔가 성취하고 의미있는 인생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꼭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