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지나니 뇌 기능이 확연히 퇴화하고 있다는 것을 날마다 실감하고 있”(298쪽)다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오래전부터 반드시 써 보리라 생각해온 것은 플라톤에 대한 것이라고 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론을 쓰고 싶은 생각에 이렇게 자료를 부지런히 모으고 있습니다”는 말과 같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다치바나 답게, 그 밖에 정통과 이단의 이데올로기 투쟁사 · 묘에 대사 · 잇쿠 대사 · 고토바인 등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거나 쓰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은근히 불안한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직도 알고 싶고 쓰고 싶은 것이 많은 다치바나도 “산더미처럼 많은 미혹과 방황 속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비트적비트적 표류하면서 살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혼돈은 그를 파멸시키지 않음으로써, 그를 오히려 더 강하게(니체) 하였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당시의 그는 건강했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맞는 소리인가?”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32쪽)

좋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른바 프리터(free arbeiter의 줄임말)를 하면서 책과 방석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다다미 일곱 장짜리 아파트에서부터 「다나카 카쿠에이 연구」까지. 그의 피가 되고 살이 된 책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완성된 다치바나 다카시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그를 형성하였던 시기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개인적으로 덤이라고나 할까? 지나가는 한마디에 도움이 되는 것이 많았다. 가령, 기디온 Sigfried Giedion의 『기계화의 문화사─말하지 못하는 것들의 문화사』란 책에 대해서 “기계화의 문화사란 한마디로 문명의 역사입니다. 이 흐름을 확실히 이해하지 않으면 역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같은 말을 흘리는 식이다.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아마 10개국어쯤 하지 않을까?

note

이 책은 (무려 27쇄 이상 인쇄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의 최종완결판’으로 요약되기도 하는데. 실제 내용 또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대학 졸업 이후부터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를 쓴 34세 이전까지 약 10년, 즉, ‘수수께끼의 공백시대’가 다뤄지고 있어 틀리지 않다. 그러나 단순히 시기적으로 앞선 책을 이어받고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절(수수께끼의 공백시대)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독서가 이루어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러한 의미에서) 완결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수께끼의 공백시대’를 다루고 있는 것은 이 책 1부의 전반부뿐이며, 후반부는 “인생의 다양한 시기에 만난, 각종 재미있는 책들을 (고양이 빌딩과 그 주변의 방을 헤매면서) 무작위로 한꺼번에 집어 들어 일사천리로 단숨에 이야기한다.”(11쪽) “막상 시작해 보니 어처구니없이 방대한 작업임을 알게 되었”(22쪽)다는 저자의 말대로 후반은 좀 서두르듯 마무리된다. 그러나 (1부의) 전반부는 나중에 꼼꼼히 손대었고, 그 결과 “정보의 밀도에서 후반부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는 낳았다.“(12쪽)

그리고 2부는 2001년 3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주간 문춘》에 연재된 서평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끝도 없이 펼쳐지는 에메랄드빛의 눈부신 서평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수백 권의) 보물과도 같은 책들이 간결하고 명쾌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역시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넉넉한 범위에 대만족! ─단, 픽션과 오락물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