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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로마사이야기
글쓴이
니콜로 마키아벨리 저
출판사
동서문화사
출판일
2008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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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니콜로 마키아벨리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책 소개

분야역사
『마키아밸리 로마사이야기』는 마키아벨리의 격렬한 조국애를 강렬하게 강조하면서 먼 조상 로마인의 정치사상을 되살려, 조국 이탈리아의 쇠퇴를 초래하고 있는 사회적 부패와 외국의 억압을 극복하려는 열의에 특징을 두고 있는 로마사책이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인을 정복하여 그 지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카르타고를 정복하여 엄청난 부를 손에 쥐었다. 세계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제국 로마, 그 위대한 번영의 빛을 화려하고 웅대한 로마제국 흥망, 그 정치적 민족적 근원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로 마키아밸리는 엮어내고 있다.

《로마사이야기》에는 정치가에게 특히 필요한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가 강조된다. 마키아벨리는 특이한 ‘정치심리학자’이며, 투철하고 냉정한 관찰력과 놀라울 정도의 예민한 분석력을 갖춘 ‘인간연구가’였다. 그는 ‘로마의 역사’라고 하는 건조한 미라가 아니라 살아있는 ‘로마인의 정신’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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