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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글쓴이
박지원 저
출판사
돋을새김
출판일
2008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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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박지원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책 소개

분야청소년
조선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유쾌하고 대담한 18세기 중국 기행.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인 『열하일기』는 1780년 6월 24일부터 8월 20일까지 청나라 고종의 칠순연 축하사절단 일원으로 연경과 열하를 다녀온 기행문이다. 기행문이면서도 일기 형식을 갖춘 『열하일기』는 문학작품인 동시에 ‘이용후생’을 추구한 연암의 실학 사상이 담겨 있는 철학서이자 실용서이다.

『열하일기』는 일상 생활에서 쓰는 용어나 세속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소설을 삽입하는 등 새로운 스타일로 인해 발간 당시 조선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체면을 중시하고 위선으로 가득 찬 양반들을 풍자하기 위해, 호랑이의 입을 빌어 양반들을 비꼬고 질책하는 소설 을 삽입하는 등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독특한 방식이 돋보인 작품이다. 이 책은 조선 시대 베스트셀러라고 할 만큼 엄청난 양이 필사되어 세간에서 읽혔다.

돋을새김에서 나온 『열하일기』는 26권 10책의 방대한 분량의 원저 중에서도 조선을 떠나 연경, 열하를 다녀오는 여정을 따라 연암의 사상과 문학성 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을 골라 한권으로 엮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연암만의 독특한 문체와 생생한 인물 묘사, 풍자 등은 최대한 살려 둔 것이 특징이다. 부록으로는 연암의 일생과 사상, 출간 당시의 시대 배경이나, 정조가 문체반정을 시행할 정도로 엄청난 바람을 일으킨 획기적인 연암 문학의 문학적 의의 등을 정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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