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의는 형을 죽이고 황위를 계승하였기에 정권의 위기가 사처에 잠복하고 있었다. 정적들이 호시탐탐 노리자 그는 송기의 계모(計謀)인 분화(分化) 책략을 써서 여러 방면의 반대세력을 무력화시켰다. 한편으로는 천하에 알려진 도장(道長) 진단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량의 인재를 선발 임용하여 정권의 안정을 추구하고 이들을 이용하여 무인들의 간정(干政)과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차단하여 조정을 환골탈태시켜 문인정치의 길을 열어 3백 년 대송 강산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동생 조광의를 황제로 만든 사람은 중국 역사 속 최후의 음모가인 송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된 조광의 정권은 사처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기에 나라를 안정시키려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럴 때 지략가인 진단이 처방한 약은 ‘원근경중(遠近輕重)’의 네 글자였다. 역사 속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현실정치의 모습이 겹쳐진다. ‘원근경중’의 깊은 뜻을 한국 정치에도 적용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