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이래 30년 가깝게 쓴 시 속에서 평온한 일상에서 순수하고 단정한 감성으로 굽이치는 생의 결을 읽어내는 이진명 시인의 네번째 시집. 이 세상을 향한 외침과 도발적인 몸짓,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한 격렬한 시세계에서 한걸음 비켜나 있으며 그저 조용하고 묵묵히 일상을 견디어내면서 시적 순간을 포착해낸다. 특히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굳이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시를 쓴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권태와 엄숙함과 비애를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시인은 언어 속에 명백하게 선을 긋는 이미지들의 전시가 아니라 나란히 마주보고 앉아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을 함께하며 시마다 따뜻한 눈물의 온기를 심어놓는다. 언뜻 냉정하고 무거워 보이지만 거기엔 생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온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차갑고 딱딱한 말투의 선언이 아닌 부드럽고 순한 어조와 구어투의 이야기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