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너는 사람이 아니야. 사람의 탈을 쓴 곰이야.”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더구나 나를 보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이 황당한 노릇을 어디에 하소연하고 나를 인정받을 것인가? 곰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어느 날 겨울잠에서 깨어나니, 사람들이 곰더러 공장에서 일을 하라고 강요한다. 곰이 아무리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곰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곰은 공장의 말단부터 최고위층까지의 사람들을 만난다. 조직 속에서 단련된 사람들은 곰을 보고 똑같이 말한다. 공장 안에 왜 곰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도 없고, 오로지 곰을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멍청이로 여길 뿐이다. 선입견과 고정 관념 속에 갇힌 사람들은 곰을 곰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거짓에 맞서던 곰은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자신들의 뜻대로 곰을 움직인 회사 간부들은 희희낙락하며 성공의 악수를 나눈다. 멍청이 하나를 일꾼으로 만들었다는 만족감일 것이다. 하지만 곰과 공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모습은 뒷모습만 보인다.
작가가 이 책을 낸 시기는 1946년이다. 당시는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여서 사회 혼란과 정체성 상실, 그리고 거짓 선전이 난무했고, 작가는 이러한 사회를 비판하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지금도 빛을 발하는 것은, 현대 사회가 더욱 발전해 갈수록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점점 심화되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