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망 없는 세계를 직시하는 믿음직한 문장들”
김주욱의 단편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 맞닥뜨릴 법한 생의 한 순간을 포착한다. 빚까지 내서 시작한 사업 오픈일을 앞두고 동분서주하던 게임업체 사장이 한순간의 판단 미스로 한강대교 난간에 매달리게 됐을 때(보드게임), 예쁘장한 외모로 무능력한 아버지와 오빠를 부양하던 이십대 여자가 남양주 별장에서 열리는 정체불명의 파티에 초대받게 됐을 때(미노타우로스), 외주업체 재하도급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김 반장이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노사분규의 한복판에 휘말리게 됐을 때(김 반장의 트렁크), 그런 순간들이 불러오는 삶의 아이러니를 깔끔한 문장으로 노련하게 묘사한다.
불행에는 예고도 없고 어떤 기미조차 없다. 아니 어쩌면, 인생은 열심히 살고자 하면 할수록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고, 파국으로 밀어붙이는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들에서조차 김주욱 소설 속 주인공들은 낙관하는 법도, 절망하는 법도 없다. 때로는 무지하게, 대체로는 담담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지나친 자의식 과잉으로 길을 잃지 않고, 관념적인 사유에도 기대지 않은 채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간다. 그런 건강한 필체가 매일 매일의 패배를 살아내게 하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