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책장 구석에 묻어버린 책

이 책의 첫인상은 썩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도입부인 1부는 무척 지루했다. 하지만 잘 짜인 편집에, 인내심을 발휘하여 2부를 다시 10분 정도 읽었다. 그 후로는 책을 읽었다가 생각에 잠겼다 하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점점 책을 덮은 채 쉬는 시간이 늘더니 급기야 조용히 책장에 책을 꽂았다. 아니 묻어버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아예 눈에 안 띄는 곳 책장 깊숙이 넣어버렸으니 말이다.

책에는 두 종류, 곧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한 종류가 더 있다.
탐욕에 가까울 정도로 책을 자주 구매하는 사이, 안목(眼目)도 꽤 커지게 되었다. 나름 좋은 책을 잘 선별하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소장하는 책들 중에는 감춰서 공개하지 않는 책도 있다. 결코 책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뛰어나기에 감추는 것이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명화(名畵)나 보석들의 가치는 희소성에 근거한다. 그런 물품들의 보관 상태를 보라. 대개는 비밀리에 숨겨져 있거나 하다못해 철저한 감시 속에 공개된다.

최근까지 그런 책이 두 권 있었다. 첫 번째 책은 절판될까 두려워 번역본은 물론 영문판 만 2권을 더 샀다. 두 번째 책은 지인(知人)에게 강제로 주었었다. 그 분이 소장한 권수가 족히 2000권을 넘지만, 그렇게 내 책을 집어간 적이 없었다. 수차례 읽었지만 당연히 다시 구매했다.
굳이 이 책을 책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묘한 소유욕만 불타오를 뿐이었다. 그래서 하루 만에 구석에 넣어버린 것이었다.

위화감을 약간 풍기는 평범한 첫인상

‘통찰의 기술’이라……. 제목에서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표지 제목의 글자체 또한 가장 흔한 것이다. 백색 바탕에 외곽을 둘러싼 테두리는 약간은 딱딱한 느낌마저 들었다. 표지는 급히 도안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하였다. 음식으로 표현하면 그저 식당에서 흔히 나오는 공기 밥을 보는 느낌이라 할까? 딱히 나쁘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이래저래 평범한 첫인상이었다.

첫 장을 젖혔더니 뜻밖에도 영문(英文)이 혼합된 공식이 맞이한다. 사실 이 부분이 꽤 거슬렸다. 굳이 시작부터 부담 줄 필요는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통찰 활용에 관한 입문서인만큼 쉽게 읽혀져야 한다. ‘경어체’를 쓰는 친절한 느낌의 본문 전개와 비교하면 위화감마저 들 정도였다.

짜임새 있는 목차. 하지만 지루했던 1부

목차의 짜임새는 훌륭했다. 특정 부분이 두드러지는 일 없이 균형이 잡혀 있었다. 소제목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 식의 구체적인 방침으로 되어 있어 쉽게 내용 짐작이 가능했다. 전체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념의 소개?이론 전개 ?응용’ 식의 매우 무난한 구조를 따르고 있었다.
혹자는 이처럼 목차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책은 좋은 책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의 생각은 다르다. 잘 짜인 목차는 훌륭한 나침반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목차는 곧 여행의 이정표와 같다. 목차를 잘 짠다는 것은 전체 여행 계획을 짜는 것처럼 어렵다. 목차가 잘 짜였다면 마땅히 칭찬받을만한 것이다.

1부는 통찰의 개념을 소개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당연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은 썩 흥미롭지 못했다. 비록 풍부한 일례를 들었지만 이미 다른 책에서 접했던 것이 상당수였다 보니 도리어 지루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언급은 부족했다.
자기 계발서를 구매하는 독자들 대개는 성질이 급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활용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글 한 줄을 통해 하나라도 깨닫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자기 계발서 구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그렇기에 이런 류의 서적들은 내용 전개가 이론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대목에서도 실제 응용 법을 의도적으로 섞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 1부는 ‘맛보기 시식 코너’가 부족했던 셈이다.

흥분의 도가니탕 2부

1부와 달리 2부에서는 지루함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언급한 실례 중에는 아는 것도 상당수 있었지만, 1부와 달리 ‘통찰’이라는 글 주제에 따라 재구성되어 새롭게 다가왔다. 수시로 등장하는 컬러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아울러 한 주제가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요약정리는 골자가 잘 추슬러져 있어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사골을 도가니탕에 펄펄 끓인 후 우려낸 즙을 마시는 모습이라 할까? 짜지도 않고 담백한 느낌이 일품이었다.

흥미진진한 내용 전개에 점점 매료되어 갔다. 자기 계발서에는 연습 예제가 자주 출현한다. 그동안 따라한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을 보는 동안에는 내내 쫓아가고 있었다.
이는 책의 내용 이해가 쉽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그럴 여유를 갖기 어렵다. 책 내용을 쫓아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진다.
또 책 내용이 흥미롭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성인 입장에서 보면 초등학생 용 서적들은 이해하기 쉽지만 이를 즐기는 경우는 드물다. 흥밋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흥미를 줄 수 있어야 독자들이 응하게 된다. 그렇기에 저학년 용 서적들은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갖가지 기교들이 넘쳐난다. 연습 예제들은 책 읽는 것을 도중에 망각할 정도로 상당한 재미가 있었다.

책 본문에 삽입된 사진 중 하나. 2부에서는 컬러 사진의 두드러진 활용으로 이해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돋보이는 실용성

철저히 좋은 내용으로 무장한 책이라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책이라면 결국 무용지물이 된다. 독자의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자기 계발이나 재테크 분야의 책들이 이런 범주에 해당한다.
이런 서적들 상당수가 좋은 취지를 갖고 있고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이런 책들로 득을 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심지어 악평을 남기기도 한다. 정작 당사자에게 별 효과를 보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그런 책들과 다르다. 저자의 설명이 매우 친절한데다, 편집의 완성도는 훌륭하다. 사진이 삽입된 시점은 절묘하고, 소주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리 요약은 가뜩이나 친절한 해설을 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해설을 보충하기 위해 쓰인 사례들은, 이미 들어본 내용이라 할지라도 이 책의 취지에 잘 맞게끔 재구성되어 질리지가 않다. 마치 오래 전에 들었던 가요가 재 편곡되면서 새로운 반향을 내는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비록 숫자는 많지 않지만 연습 예제를 첨부함으로써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단지 책 한 권 읽어보았을 뿐인데, 연습 예제를 푸는 동안 쏟아지는 아이디어의 질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스스로도 탄복할 정도였다. 수련 중인 무사가 대단한 비급을 발견하였다면 이러한 기분이 들까?

이 책을 접하는 사람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충분한 책의 내용을 이해한 상황에서 연습 예제를 통해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면, 실제 삶에 응용해 볼 여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마다 이해도에 대한 차이는 있을 수 있을 텐데, 혹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라면 이 책을 2~3번 더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독자라면 저자의 이메일을 통해 문의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책에 대해 의문점을 가진 독자를 홀대시할 저자는 없을테니 말이다. 진정으로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근거가 박약한 비평을 하기에 앞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볼 것이다.

열쇠 구멍 속 새로운 세상

사람 마음이란 본래 간사한 것일까?
한 차례 정독이 끝난 후에 다시 보게 된 표지는 더 이상 단출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만 해도 수수해 보였던 표지와 제목?글자체는, 불필요한 수식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본에 충실해 보이는 인상을 받았다.
표지 가운데의 열쇠 구멍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 배경은 하얀색 표지 배경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흡사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사실 그렇게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알게 된 통찰력의 위력에 적잖이 흥분마저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서점 계산대에서 ‘배려’라는 책을 사면서 자신의 앞 사람의 카드 결제 처리가 늦다고 투덜대는 류(類)의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책에 대해 흠잡을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새로운 경지의 사고(통찰력)를 배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그 길로 안내하는 열쇠 역할을 톡톡히 해 줄 듯하다. 무난히 권하는 바이다.

책 표지의 핵심이 되는 열쇠 구멍 그림. 통찰력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데 필요한 강력한 원동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