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한 평민 지식인이라고 해서 누군가 했더니, 남강 이승훈의 종증손이며 역사학자 이기백의 아버지다. 이승훈이 오산 학교를 세우고 용동에 이상촌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 이찬갑은 그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 평화, 평등, 평민주의자, 무교회주의자였던 이찬갑은 이승훈마저도 서슴없이 비판하던 줏대와 열렬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대에 한 점 빛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구독하던 동아일보를 스크랩하며 세계정세를 파악하고 거기에 자신의 감상과 평을 적어넣었다. 한 때 일제의 감시를 피해 땅 속 깊이 항아리에 묻어두기도 했던 이 신문 스크랩북 7권이 이 책을 낳았다. 저자 백승종은 이기백이 쓴 어떤 기고문에서 그 스크랩북의 존재를 알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꿈꾸어오던 미시사에 적격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연구가 3년, 스크랩북과 이찬갑의 소논문, 기고문, 편지, 가족들의 증언 등을 종합하여 그는 마침내 평민 지식인 이찬갑의 내면 세계에 다가가게 되었다.
책은 국내 최초의 본격 미시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이찬갑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지식인의 내면 풍경을 엿볼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또 위대한 평민을 기른다는 신념 그대로 충남 홍성에 풀무학교를 세운 사람이라는 점에서 교육자들의 관심을 끌만도 하다. '그 나라의 역사와 말'이 아니고서는 민족이 일어설 수 없다는 이찬갑의 신념탓인지 그의 아들들이 역사학자와 국어학자가 된 사실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