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본격 문학선인 사계절 1318문고의 48번째 소설이다. 유럽의 동양 원정이 한창이던 17세기 초, 향신료를 사들이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나로 출항했다가 8개월 만에 좌초한 바타비아호의 실화에 근거한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이 배에 얀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승선시킨다. 근대 범선을 대표하며 신흥 강국 네덜란드의 자부심의 상징이었던 바타비아호는 산호초에 좌초하여 파국적인 운명을 맞았지만, 이미 그 전에 승선한 사람들 사이의 신분 차이로 인해 물자의 분배가 불공평하게 이루어지고 불합리한 특권 행사가 횡횡하며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정복욕과 진보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바타비아호의 침몰의 의미는 그 이상이다. 침몰 후 생존한 사람들은 무인도를 점거한 뒤, 잔인하고 파괴적인 몇몇 사람에 의해 무력하게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며 제거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얀은 지극히 선하지만 언제나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고, 용감하지만 쉽게 나약해 지는 우리 모든 인간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약제사인 코르넬리스의 덫에 걸려들어 사람들의 동향을 보고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누구나 자기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권력을 내면화 하는 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람과, 혹은 우리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정한 용기를 보일 기회를 잃고 나약하게 행동하다가 결국에는 문명 세계로 돌아갈 구조선을 기다리는 대신 원주민들의 세계로 들어서는 개인 '얀'을 다룬 이 소설은, 나라의 꿈과 희망인 젊은이들의 의식에 대한 사회적 위기감이 팽배하던 요즘에,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행동'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진지한 내적 성찰의 계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