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당시 일본은 전후 50년을 맞아 전후 책임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이 책의 지은이 도미야마 이치로 역시 전후 50년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매듭을 계기로 그간 자신이 전쟁과 전사(戰死)를 주제로 써왔던 글들을 모아서 그 해 8월 15일 '전장의 기억'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1부에 해당하는 '전장의 기억'이다.
도미야마는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전장의 기억은 희미해진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이월되었으며, 또한 진부한 일상에서 전장이 준비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왜 전쟁이 아닌 전장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근대의 전쟁은 모든 공간을 전장으로, 모든 인간을 병사로 만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지은이는 폭력을 예감하는 하나의 장(場)으로서 전장을 설정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는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전장에서 이월된 폭력이 망령처럼 들러붙어 있으며,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그 진부한 일상에서 또 다시 전쟁 동원이 준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하나 지은이의 생각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폭력의 주체와 객체를 모두 문제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폭력의 주체와 객체를 단순하게 '가해자'와 '희생자'로 묘사해 버리는 것을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