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의 삽화로 정식소개된 이와사키 치히로(1918~1974)의 창작그림동화가 일본과의 공동제작을 통해 국내최초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미 3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사후에도 ‘어린이처럼 투명한 수채화의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치히로는, 그림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한 선구자로서 세계의 많은 동화작가나 그림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반전?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에서 출간되어 전 인류에 문화적 교감을 이끌어내고 붓놀림 하나에도 세계의 어린이와 평화, 생명의 존귀함을 실어 그렸던 치히로의 그림은 처음 대하는 이들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마치 어른들에겐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친숙하고 정겹기도 하며, 금방이라도 옅은 채색 캔버스 위로 시 한 편이 흩날릴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림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온 그녀의 작품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모든 어른들에게 ‘어린이적 감성’을 새롭게 일깨우는 즐거움을 열어주었는데, 『이웃에 온 아이』 는 그녀의 이런 예술세계를 한껏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치히로가 단지 삽화만 그렸던 것이 아닌, 1년에 1권씩 그녀 자신이 글과 그림을 직접 쓰고 그린 ‘유일한 창작그림동화’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최대한 제작에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동양의 수묵화와 서양의 수채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원화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일본에서 특별히 인쇄를 맡아 그림과 글의 관계, 페이지의 전개, 인쇄 효과 등 그림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을 시도했고, 짧은 문장들은 그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명도를 달리 해 제작했다.
치히로 아트북 2권 『이웃에 온 아이』는 미묘한 아이들의 행동과 심리가 은은한 파스텔 톤으로 그려져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옆집으로 이사 온 아이, 어떤 아이일까? 또 옆집에 사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신경이 쓰이면서도 좀처럼 친구가 되는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두 아이... 이 책은 그 두 아이가 친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순수한 모습 그대로 녹아 있다. 그리고 나이를 훌쩍 넘긴 어른들이라도 누구나 이런 생각과 일들은 한번쯤 체험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파스텔로 선을 그리고 그것에 물을 묻히면, 수채그림 물감보다 투명한 아름다운 색이 흐른다. 그렇게 재미있는 실험을 하면서 만든 책”이라고 한다. 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현재까지 영어판을 포함해 지금까지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 네델란드, 스웨덴,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각국에서 번역출간되어 극찬을 받았으며, 일본에서도 출간 30년이 지난 지금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그림책의 걸작이다.
“내 마음에는 어릴 적 보았던 그림들이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지금 그 그림을 보게 된다면 어떨지. 다시 보고 싶지만, 동화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것으로 이제는 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마음에 받아들인 감동이 한 사람의 성장에 영향을 주어 보다 아름답게 성장하도록 해주고 마음의 양식이 될 수도 있도록 해줍니다. 동화를 그린다는 책임감 때문에 그것이 조금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가능한 한 시처럼 어휘가 짧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를 좋아합니다. 여자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얼굴인지를 묘사하는 성인 소설같이 극명한 필치에는 내 그림의 이미지는 건조해져서 도무지 멋들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터벅터벅 걸어가는 할머니가 있다면 그 정경은 왠지 모르게 정겨워져서 한번쯤 그림에 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완성하고 치히로가 후기에 밝힌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