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에서부터 냉전의 기원, 유럽 제국주의의 종언과 식민지 해방, 유럽경제공동체의 탄생과 발전, 서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불만, 소련의 동구권 지배와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 발칸 전쟁, 난민과 불법 이민 노동자, 그리고 스포츠, 음악, 영화 등 유럽인들의 일상적 삶에 이르기까지 전후 유럽의 모든 것을 철저히 해부하고 있다.
40년간 유럽이라는 주제에 헌신해 온 저자는 풍부한 정보와 깊은 학식을 바탕으로 현대 유럽을 만든 흐름과 사건들, 인물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연구 대상자들의 행위와 핑계, 공적, 실패들을 날카롭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과,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수렴되지 않는 '유럽화'라는 길을 열망한다는 분석, 유럽식 사회모델과 미국식 생활양식의 비교 등을 깊이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유럽 이야기의 주제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주제들이라는 데 있다. 과거 청산과 통일, 지역감정, 이데올로기와 지식인의 쇠퇴, 반미주의와 반공주의, 출산율 감소와 국민연금 고갈, 공기업 민영화, 이주 노동자 문제 등 각각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이 유럽의 경험을 통해 참고점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계급’에 집착하며 ‘시장’을 고려하지 않는 좌파와 ‘복지’를 포기하고 ‘공익’을 고려하지 않는 우파 모두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이 유럽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 얘기한다. 좌파는 ‘계급’을 뛰어넘어야 하고 우파는 ‘시장’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적 자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유럽의 경험과 저자의 분석을 곧이 곧대로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유럽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정도로 유럽의 경험이 시사하는 바가 많겠지만, 유럽 역시 많은 사회문제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사회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후 60년 동안의 유럽이 거친 정치, 경제, 사상의 거대한 실험이 우리에게 고민의 폭을 더욱 확장시켜 줄 것이란 점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고민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달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