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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소설집
글쓴이
박지원 저
출판사
새물결플러스
출판일
2016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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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박지원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18세기는 조선 사회가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던 시기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유교 경전 중심의 사유체계에 도전하고 주체적이며 자주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재해석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태동했는데 바로 그 중심에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다산 정약용이 혼란과 도탄에 빠진 조선 사회를 유교적 이상과 질서에 따라 재구성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사구시적인 논리를 펼쳤다면 연암 박지원은 조선 사회의 음습한 부분들을 해학과 풍자, 조롱과 꾸짖음 등의 양식을 통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글을 다수 남겼다. 그는 해학과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조선 사회의 허구성과 위선을 까발리고 고발하였다. 동시에 참된 사회, 참된 인간존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리하여 그의 글은 단순히 기성사회를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성과 신분에 종속되지 않고 참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 사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도록 재촉한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소설은 연암의 인품과 문제의식을 잘 드러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문학적 양식을 긴밀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사료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간호윤 박사의 밀도 높은 주해와 감칠맛 나는 언어 선택은 연암의 소설의 가치를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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