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아침부터 교문 앞에는 선도부들과 선생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올바른 교복, 이름표, 뺏지 착용을 검사한 후 치마 길이와 머리 길이를 꼼꼼하게 체크한 후에야 교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한 번도 걸린 적 없었고 두발 검사에 대한 저항감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왜 내가 내 마음대로 머리를 길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없었고 학교에서 시키는 일이니 당연히 따랐을 것이다. <열일곱 살의 털>의 인호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별 생각 없이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창피한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내가 받은 부당한 대우에도 저항할 줄 몰랐고,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도 눈을 감았을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인호는 한 아이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때리는 선생님의 머리를 향해 창문에서 콩주머니를 던진다.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을 해서 그렇게 맞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인호는 울컥했다. 너무나 작은 아이. 선생님한테 맞아서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한 아이였기에 그 아이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멈추기 위한 방법은 선생님에게 가지고 있던 콩주머니를 던지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뒤 두발 규제에 걸린 한 아이의 머리카락에 라이터 불을 들이대는 선생님의 행동을 막는다. 이로 인해 반성문을 쓰게 되지만 마땅히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마음대로 짓밟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한 선생님이 오히려 잘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두발 규제에 대한 시위를 하기 위해 유인물을 만들고 이 일로 학교는 발칵 뒤집힌다.

이 일로 선생님이 인호의 집에 전화를 하게 되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인호의 아버지였다. 인호는 한 번도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20여 년간 가족의 일원이지만 부재중이었던 인호의 아버지. 아버지는 커다란 배낭 하나를 메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인호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부재는 그에게 어떤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까? 이 책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인호와 아버지가 17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함께 하는 과정이 너무 짧게 이야기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 그냥 그렇게 가능했을까?

열일곱 살, 머리털, 아버지 이들은 모두 인호에게 존재감을 깨닫게 하고 그것으로 인해 한 걸음 성장할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결국 인호는 정학 30일을 당하고 교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할아버지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고 학교로 찾아오신다. 선생님들이 두발 규제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머리칼을 바리깡으로 잘라 버린 후 할아버지는 그 아이들의 뒷머리를 다듬어 주기로 하시지만 실은 각자의 뒷머리에 멋지고 큰 별 모양을 새겨 놓는다.

인호의 앞날에 든든한 후원자인 아버지, 할아버지. 그들은 함께 있어서 좋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인호의 미래가 할아버지가 아이들 머리에 새겨놓은 큰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