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를 경영하던 제국주의의 시절, 유럽은 자신들의 문명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지녔다. 오직 유럽만이 부단한 진보의 과정을 거쳐 왔고, 여타 지역은 유럽인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전파되어 발전했다는 것이다. 근대화 이론, 유럽 중심주의, 식민주의 등을 비판하며 세계사의 탈식민화에 평생을 바친 저자는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사 서술에 날 선 비판을 가한다.
사회학의 시조라 불리는 막스 베버에서 시작해 린 화이트, 마이클 만,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 현재 서구 교양층의 지적 자산을 구성해온 대가 여덟 명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의 주저를 중심으로 그들의 억지 논리와 오류를 대놓고 비판했으며, 이 여덟 학자가 유럽의 우월성을 증명한다며 내놓은 논거들을 30가지로 정리하고,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사 서술의 모형을 제시하며 우리 시대 역사가의 대부분이 이 모형의 어딘가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은 세계적 석학들의 논리에 이렇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나 하는 놀라움마저 선사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내의, 그리고 여타 비서구 지역의 역사학계가 서구 역사학을 그대로 수입하면서 그들의 세계관까지 그대로 흡수했듯이, 또 그들의 저술로 역사를 공부한 대중들이 서구의 가치관을 하나의 표준으로 내면화했듯이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 체계와 심성을 규정하는 ‘권력’에 관한 문제다. 때문에 이 책은 단지 몇몇 학자들의 주장을 논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우리의 인식체계를 만들어온 '권력'을 해체하고, 세계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세계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