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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광시곡 2
글쓴이
이리리 저
출판사
가하
출판일
2016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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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이리리

좋아하는 것 - 해피 엔딩, 동족을 제외한 동물, 지오반니 갈리 초콜릿, 브뤼셀
싫어하는 것 - 새드 엔딩, 동물을 싫어하는 동족(인간만 살라고 만들어진 지구가 아닙니다), 서울의 바뀐 버스 노선(불가사의 수준, 땅 속 세상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멍*부.

『현향기』, 『연의 바다』, 『광시곡』, 『마녀의 정원』, 『일월』, 『영원의 미로(공저)』를 출간했다.

책 소개

분야로맨스
1. 책 소개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난 다시 돌아가느니 차라리 내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을 거예요. 그렇지만 난 견딜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도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믿고 기다려요.

음악에 대한 열망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신분에 얽매여 그 마음을 숨겨야만 했던 알렉산드르는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예린과 마음을 나누기 시작한다. 하지만 냉혹한 리바노프 대공은 둘의 사이를 인정하지 않고 갈라놓으려 하고, 결국 알렉산드르는 빈에서 실종되고 만다. 친구 한스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는 예린과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후 짧은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그 사이 전쟁이 시작되는데…….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언젠가는 그대도 무덤에 묻힐 날이 오리라 탄식할 날이 오리라
그대의 심장이 불타올라
마음속에 품은 연정, 그것을 사랑하라
그대의 가슴이 그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두근거리는 동안
그대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언제나 그대를 즐겁게 해주고
한 순간도 그 사람을 슬프게 하지 말라

2. 작가 소개

이리리

좋아하는 것 해피 엔딩, 동족을 제외한 동물, 지오반니 갈리 초콜릿, 브뤼셀
싫어하는 것 새드 엔딩, 동물을 싫어하는 동족(인간만 살라고 만들어진 지구가 아닙니다), 서울의 바뀐 버스 노선(불가사의 수준. 땅속 세상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멍*부

▣ 출간작 : 현향기, 연의 바다, 광시곡, 마녀의 정원, 일월

3. 미리 보기

오후 늦은 시간 파리의 한 그리스 정교회 성당에는 조촐한 결혼예식이 올려지고 있었다.
결혼식이 있는 날은 보통은 이 넓은 공간이 미어터지도록 축하객들로 넘쳐 났다. 그런데 엄숙한 예식에 모인 것은 재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십여 명이 고작이었고, 꽃을 든 신부가 아니라면 결혼식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간은 휑했다.
오히려 연신 수첩에 끄적거리고 스케치를 하면서 결혼식을 취재하느라 여념이 없는, 기자로 보이는 인간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만약 이 신성한 공간에 사진기를 들이대는 것이 허용됐다면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그네슘 냄새와 연기를 폴폴 풍기며 펑펑 터지는 그 흉측스런 물건을 요란하게 사용했을 것이다.
늙은 사제는 스캔들을 찾아 코를 벌름거리는 기자들을 향해 경고하듯 수시로 노려보며 미사를 진행했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50년이 다 되어 가는 그였다. 박해를 피해 파리로 오기 전까지 사제 생활의 대부분을 혁명 이전 러시아에서 했고 당연히 리바노프란 이름은 알고 있었다.
혁명으로도 몰락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가문의 상속자가 이렇게 썰렁한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내심 당혹스러웠다. 왜 하나뿐인 후계자가 빈이 아니라 파리에서 결혼을 하는 것일까. 그의 의구심은 신부를 보자 자연스럽게 풀렸다.
편견 많은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순탄치 않을 결혼이었다. 그럼에도 눈앞의 한 쌍을 보면서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수없이 많은 결혼식을 집전해 온 그였다. 사연 첩첩한 혼인도 많이 봤고 로미오와 줄리엣에 버금가는 커플을 맺어 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서 마주보고 선 젊은 남녀만큼 서로에게 몰입하고 사랑하는 한 쌍은 보지 못했다. 둘에게서 풍겨 나오는 행복감만으로도 넓은 공간을 다 메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예쁜 잉꼬 한 쌍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커지는 미소를 기침으로 감추며 사제는 알렉산드르에게 혼인 맹세를 시켰다.
[나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리바노프는 당신 예린 서를 아내로 맞아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가난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변함없이 아끼고 사랑할 것을 신 앞에서 맹세합니다.]

울림 좋은 그의 목소리는 제단 앞을 메아리치듯 울렸다. 그 음성을 홀린 듯이 들으며 예린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빈에서 파리로 돌아오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떠올렸다.
어수선한 정국과 한스가 위조해준 여행증명서 덕분에 국경을 넘는 데는 성공했다. 문제는 귀환이었다. 다시 파리로 돌아오려면 몇 개의 국가를 거쳐야 하는데 여권이 없는 알렉산드르로선 불가능했다.
프랑스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하고 망명자용 여행증명서를 받기까지 두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지독하게 느리고 보수적인 관료주의가 아니라 공포였다.
만약 또 다시 헤어져야 한다면…….
한 때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고 두고두고 소녀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던 강명화, 장병천 커플이나 윤심덕, 김우진의 동반 자살이 비로소 낭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일로 처절하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르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탄탄대로가 펼쳐질 거라곤 이제 믿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눈을 떼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릴 그의 친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고 인종도 다른 두 사람의 차이.
결혼을 알리는 편지가 조선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이 느낄 실망감과 분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최악의 경우 의절도 각오해야 했다. 실상 그에게 빠져든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그녀가 조금만 더 현명하다면 루브르에 걸린 그림을 보듯 동경하는 것으로 그쳤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알렉산드르라는 영혼의 본질을 안 순간부터 그녀는 그를 사랑해야 할 운명이었다. 알렉산드르 없이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 지금 그녀 앞에 서 있고 그녀의 손을 으스러질 듯 잡고 있는 이 남자만 중요했다.
그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는 예린을 마주보는 알렉산드르에겐 해일처럼 밀려오는 불안감과 행복감이 교차했다. 지금 잡고 있는 손을 놓으면 바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무의식중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예린이 눈앞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항상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타인에 대해 이렇게 과도한 집착을 느낀 것이 처음이었기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예린에게만은 자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솔직히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했다. 사제나 결혼식에 참석한 몇 안 되는 하객들의 눈에는 행복한 신랑이지만 그는 지독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행복과 불안이 교차되는 그의 심리를 예린만은 읽었다. 그리고 이해했다.
‘늙어서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는 날까지 난 당신만 사랑할 거예요.’
예린은 맹세로 반짝이는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켰다. 그 메시지를 읽은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고 주변 사람들은 다 사라져 버렸다. 둘은 서로만의 세계에 존재했다.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떠돌던 그들은 반지를 교환하라는 사제의 지시에 지상으로 돌아왔다.
신부에게 넋을 잃은 전형적인 애송이 신랑이 되어버린 알렉산드르의 모습에 쿡쿡거리던 렌스키가 신랑 들러리로서 임무를 뒤늦게 떠올리며 반지를 건네줬다.
알렉산드르의 커다란 손에 놓인 초록색 보석이 박힌 작은 반지를 보며 예린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이 반지는 그들이 극적으로 파리에 돌아온 날 저녁, 렌스키가 내놓은 알렉산드르의 모친 타티아나의 유물이었다.
임신이라는, 피할 수 없는 부정의 증거로 황실 발레단에서 쫓겨난 가련한 소녀. 버림받은 수치심과 고통으로 넋을 잃은 그녀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지어줄 기력도 없었다. 이름도 없던 아기는 세례식 때, 알렉산드르 2세의 열렬한 추앙자인 사제가 황제와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그 이름을 붙여 주면서 알렉산드르가 되었다.
이런 사연을 전혀 몰랐던 렌스키는 알렉산드르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타티아나에게 청혼할 때 알렉산드라이트 반지를 내밀었다. 알렉산드르 2세의 생일날 발견되어 알렉산드라이트라는 이름을 얻은 보석은 그들을 묶어 주는 약속의 증거였다. 반지는 알렉산드르인 동시에 가족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짧은 행복과 긴 이별. 아들과 재회할 날을 기다리다 죽음에 이르면서 타티아나는 몸의 일부 같았던 반지를 빼어 렌스키에게 건네줬다. 알렉산드르의 아내에게 이 반지를 전해 달라는 당부가 맑은 정신으로 한 마지막 대화였다.
예린에겐 너무 작아서 크기를 늘리는 수고가 있었지만 반지는 이제 새로운 주인의 손에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미소가 만면한 가운데에도 렌스키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감추진 못했다. 동시에 반지를 낀 예린의 손가락을 바라보는 눈길엔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감이 가득했다.
알렉산드르를 위해 준비한 반지를 예린이 그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사제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결혼식은 끝이 났다.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훌쩍이며 제일 앞자리를 지키던 레종과 츄밍이 예린을 포옹했다.
[축하해, 예린.]
[축하해요, 예린 양, 사샤, 행복해야 한다.]
만약 초대하지 않았다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저주한 카라보스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심통을 부릴 거라고 하며 찾아온 콕토도 그다운 신랄한 축하 인사를 알렉산드르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샤, 축하한다. 드디어 그 늙은 악마를 한 방 먹이는 데 성공했구나.]
최소한의 하객만 참석한, 간소하다 못해 쓸쓸한 결혼식이었지만 진심어린 축하는 어떤 호화로운 예식보다 든든하고 소중했다. 가족의 축복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을 벌충이라도 해주려는 것처럼 늙은 사제도 계속 프랑스 어와 러시아 어를 섞어가면서 아낌없이 축복을 해줬다.
그러나 종교적 예식이 주는 신성함에 눌려 있었던 기자들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파리 사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인기 절정의 플레이보이 젊은 리바노프 대공. 히틀러에 반대해 약속된 지위와 막대한 유산을 포기하고 자유를 찾아 극적인 탈출에 성공하다.
그것만으로도 사교란을 며칠은 메워줄 기사거리였다.
하지만 스캔들의 냄새를 맡는 데 탁월한 황색 신문과 사교란의 기자들은 체코에서부터 동행한 여자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망명이 정식으로 허용되기까지 여정 동안 리바노프 가의 젊은 상속자와 내내 함께했다던 동양 여자. 지금 그와 결혼하는 여자가 바로 그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한 이유가 아닐지. 만약 사실이라면 그거야말로 구독자들이 푹 빠져서 읽을 극적인 스토리였다.
이미 완성해놓은 소설에 더할 약간의 근거를 찾아 그들은 눈이 벌게져서 달려들었다.
[리바노프 대공, 빈을 떠날 때 함께 동행했다던 여자가 누군지 억측이 난무하는데 그 신원을 밝혀 주십시오. 지금 결혼한 신부인가요?]
[새 신부가 일본인이란 것이 사실입니까? 당신은 독일에 협조를 거부하고 망명했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무자비하게 파고들려고 달려드는 기자들을 보는 알렉산드르의 눈은 싸늘했다. 미소를 한 겹 바르긴 했지만 세상과 자신을 여지없이 차단하는 냉담함은 노회한 기자들까지도 질리게 하는 위력이 있었다.
[전 공식적으로 리바노프 가를 떠났고 이제 파리의 망명객 중 한 명입니다. 저나 제 신부나 할 얘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이상 어떤 대답도 하지 않겠습니다.]
지극히 정중하지만 차갑게 그는 기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예린과 소수의 하객들을 인도해서 성당을 빠져나갔다.

결혼 축하연은 렌스키의 소원대로 들레세르 거리에 있는 그의 집에서 열렸다.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웨딩 케이크까지 준비된 축하 만찬은 참석자만 적다뿐이지 격식은 모두 갖춘 것이었다. 특히 뫼리스 호텔 레스토랑의 요리장이 오랜 단골 렌스키의 부탁을 받고 특별히 준비한 만찬은 백미였다.
응접실로 옮겨 가 여자들은 차를, 남자들은 마지막 남은 샴페인을 나눠 마시는 것으로 만찬은 끝났다. 그대로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듯 약간 술이 오른 콕토가 주책을 떨었다.
[마드모아젤, 아니 이젠 마담이군. 마담 리바노프, 오늘 당신들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모인 우리들을 위해서 당신의 아름다운 피아노를 한 곡조 들려주지 않겠소? 난 그 소문 자자했던 당신의 베토벤 3번을 듣지 못한 불행한 파리지엔느 중 한 명이라오.]
기대감 어린 눈길이 예린에게 쏠렸다. 연주할 자리를 심하게 가리는 그녀지만 이 선별된 소중한 친구들을 위해서라면 피아노를 치지 않을까. 기대감이 방안을 가득 채웠지만 예린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수치심과 가벼운 모욕감으로 붉어지는 콕토를 향해 예린은 살짝 윙크를 보냈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그녀의 남편이 된 남자를 애정 가득한 눈길로 올려봤다.
[알렉, 당신의 연주를 듣고 싶어요.]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사정을 잘 모르는 츄밍과 일을 벌인 예린을 제외한 사람들의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아무리 예린이 알렉산드르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새 신부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지나쳤다.
놀란 표정은 각기 달랐지만 똑같은 메시지가 폴폴 풍겨 나왔다. 그러나 내내 작정을 하고 있었던 예린은 대담하게 요구를 반복했다.
[알렉. 결혼 선물로 당신 연주를 듣고 싶어요.]
알렉산드르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는 건 나란히 앉은 그녀가 가장 잘 알았다. 그래도 지금 물러설 수 없었다. 아니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되었다. 그건 그녀가 알렉산드르를 사랑한다는 것만큼 확실했다.
애원하듯 그를 보는 예린, 그녀를 외면하고 잡아먹을 듯 피아노를 응시하는 알렉산드르. 숨소리를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추이를 주시하는 눈동자들. 누군가 지금 이 응접실을 들여다 봤다면 마법사가 나타나 정지마법을 걸지 않았나 잠시 착각할 정도로 아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조차 멈춘 것 같은 고요는 알렉산드르가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움직이는 건 오로지 그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예린까지도 포함해서, 모두 알렉산드르의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만 겨우 움직였다.
의자에서 일어설 때 잠깐 비틀거렸던 그는 유연한 걸음걸이로 한때 자신의 보물이었던 그랜드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천천히 뚜껑을 열고 피아노 의자를 당겨 익숙하게 자신의 키에 맞도록 낮췄다.
마침내 의자에 앉은 그는 하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소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신부를 위한 선물입니다.]
건반에 손을 올린 알렉산드르가 첫 소절을 치자 츄밍의 입에서 가장 먼저 부러움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 이제 사랑이니 낭만이니 하는 단어에서 아무 설렘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마담 레종도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알렉산드르가 예린을 위해 치는 곡은 ‘사랑의 꿈’이었다.
리스트의 야상곡 중 마지막 3번은 사랑의 꿈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 선율의 아름다움은 말할 수 없이 뛰어났고 감성적이었다. 하지만 응접실에 앉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거나 혹은 질투에 빠져들게 한 이유는 이 곡이 담고 있는 의미였다.
사랑의 꿈은 독일 시인 프라일리히라트(Freiligrath)의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란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음악이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언젠가는 그대도 무덤에 묻힐 날이 오리라 탄식할 날이 오리라
그대의 심장이 불타올라
마음속에 품은 연정, 그것을 사랑하라
그대의 가슴이 그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두근거리는 동안
그대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언제나 그대를 즐겁게 해주고
한 순간도 그 사람을 슬프게 하지 말라

사랑에는 기쁨만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아픔까지도 감싸안는 사랑, 죽음에 이르러서야 끝이 나는 사랑을 찬미한 시는 리스트의 피아노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알렉산드르의 손끝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연가(戀歌)로 바쳐지고 있었다.
그가 연주하는 동안 예린은 깍지 낀 양손을 가슴에 꼭 붙인 채 감히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슴이 터지지 않도록 꼭 누르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가 건반에서 손을 떼고 나서야 그녀는 뺨을 타고 내리던 눈물을 의식했다. 손으로 눈을 비벼 물기를 훔쳐낸 예린은 그의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오래 전 배에서 했던 선언을 반복했다.
[당신은 정말 피아노를 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에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알렉산드르의 입에서 뜻밖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는군요.]
거의 웅얼거림에 가까운 낮은 속삭임. 그렇지만 음악이 준 여운에 젖어 고요하던 공간을 채울 정도는 충분히 됐다. 천만뜻밖인 대꾸에 모두 ‘헉’ 하고 숨 막히는 소리까지 내고 말았다.
정말이냐고, 피아노를 다시 시작할 것인지. 묻고 싶어 다들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안달복달하는 분위기를 모를 리도 없건만 알렉산드르는 아무도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그만 돌아가죠, 예린.]
천신만고 끝에 성공한 결혼과 맛있는 요리, 알렉산드르의 연주에 흠뻑 취해 있었던 사람들은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시계를 올려봤다. 결혼식이 늦은 오후였단 걸 감안해도 통상적인 결혼 만찬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는 자각을 한 하객들은 서둘러 일어설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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