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말, 신세대 문학의 열풍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몇몇 중견 작가들의 노고가 우리 문학에 신선함과 풍성함이라는 보기 좋은 조화를 이뤄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중견 작가 중 김원일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마당 깊은 집』에서 우리는 6.25 이후 피폐해진 민중의 삶과 그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우리네 이웃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분단'은 그의 문학에 있어서 처음이자 모든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서, 그러한 일관된 소재 속에서도 그의 작품은 고른 작품성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번 제2회 '황순원문학상'에 단편 「손풍금」이 수상작으로 결정된 것이 좋은 사례다.
역사전공 대학원생 경식과 그의 큰할아버지 박도수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경식은 우연히 작고한 작은할아버지 박광수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석사 논문으로 를 쓰게 된다. 작은 할아버지 때문에―그의 가족이 겪은 고생의 원인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갈등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남과 북 체제 유지의 경쟁 속에 내몰려야 했던 나약하기만 했던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했던 고통이다―엄청난 고생을 겪었던 큰할아버지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이 함께 했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게 되며, 그가 보이는 감정의 변화는 이 소설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평론가 권성우는 작품해설에서, 박도수가 박광수와 함께 한 해방공간 동안의 북한 시절을 추억하는 "해방과 전쟁 사이 우리 가족이 한 울타리 안에 살았던 한 시절이었고, 그 한때는 분명 한여름날 소나기 끝에 보게 되는 오색찬란한 무지개, 그렇게 영롱한 시간대였다."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가족(인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뜻하는 듯하다. 「손풍금」은 기법상의 실험성이 탁월한 작품이다. 작가는 한 가족을 고난에 빠뜨린 끔찍한 비극을, 경식과 박도수의 시점을 교차해가면서 보여준다. 시점의 교차는, 곧 인식의 다름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그리고 그 인식은 이념대립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분단은 역사적 사건이나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화해의 메시지는 (분단이라는 소재가) 문학사적으로도 하나의 매듭이 지어질 때가 왔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덧붙여서 손풍금은 '아코디언'의 북한말이다. 북한에서는 손풍금이 대중악기의 하나로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일부 학생들의 연주실력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하니, 제목 역시 그가 제시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아닐까?
본선에 함께 오른 신경숙의 '달의 물', 김인숙의 '숨은 샘', 배수아의 '시취(屍臭)', 이승우의 '책과 함께 자다', 이혜경의 '봄날은 간다', 최윤의 '밀랍 호숫가로의 여행', 최일남의 '서울은 파스텔톤', 서정인의 '의료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