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약적 경제성장과 월드컵 열풍 덕택으로 최근 베트남에는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념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그렇게 아물고 있는 중이지만그러나, 베트남전(월남전)에 투입됐던 우리나라는, 전쟁 중 이뤄졌고 여전히 미결인 채로 남아 있는 '양민 학살'이나 참전 군인(군속)들과 베트남 여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 따이한' 문제 등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베트남과는 아직도 '먼 나라'의 관계다. 80년대 노동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작가는 '호 아저씨'라 불리는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치민의 삶을 뒤좇는가 하면 베트남 곳곳을 훑어보며 아직도 남은 전쟁의 상흔을 들춰보며 오늘의 베트남을 이야기한다.
외세의 지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와 베트남의 역사는 매우 비슷하다. 내내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었고 20세기에 들어와 제국주의 열강들의 지배를 받았던 것이 그렇다. '깡마르고 볼품없는 동양인' 베트남인들은 그러나 프랑스를 물리쳤고 미국을 물리쳤다. 호치민은 한 명의 프랑스 인이 죽을때 베트남 사람 열 명이 죽는 현실앞에서, '프랑스 연방'의 일부가 되는 것마저 동의할 정도로 '굴욕과 수모를 감수하고 양보'를 거듭하지만 프랑스는 끝내 협상을 거부하고 전쟁을 시작한다. 호치민은 전면적 항전을 선언하며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총이 있는 사람은 총을, 칼이 있는 사람은 칼을, 칼이 없는 사람은 곡괭이나 막대기라도 좋습니다. 일어납시다."라고.
오늘의 베트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늘의 그들은, "과거를 접고 미래로 나아가"는 자세와 아울러 그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과거를 잊는 법 또한 없다. '가해자'의 일원으로서, 비슷한 역사를 가진 아시아 국가인 우리에게 베트남을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를 이해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번드르르한 서구 중심의 기행문에 지친 독자들은 물론 '국가와 자존심'에 관심있는 독자들이 읽어도 좋을만한 책. 또한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은 '베트남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이란 부록을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