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쓴 산문을 읽는다는 것은, 물론 그 작가를 추종하는 독자들에 한해서겠지만, 마치 사모하는 이의 사생활을 몰래 엿보는 듯한 쾌감을 전해준다. 그 쾌감은 '높게 만' 보아왔던 소설가라는 존재들이 우리와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잠자며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안도감이기도 하며('여자는 이슬만 먹고 사는줄 알았다'는 순진무구한 남자들을 생각해보라), 자유로운 산문형식 속에서도 빛나는 그들의 탁견에 대한 경외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어른노릇 사람노릇』이후 5년만에 나온 산문집이지만, 그동안 숙성된, 삶에 부대끼며 느껴온 생에 대한 작가의 사색은 여전히 예리하다. 표제작인 「두부」에서 두부는, 다 같은 두부가 아니다. 평범한 이들은 감옥문을 나설때 대부분 두부를 먹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보석으로 나오면서도 두부를 먹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에게 '두부'를 먹게 한 그는 감옥을 나서면서도 여전히 당당했고 주민들은 환영 플래카드를 걸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전직 대통령도, 민주투사도 아니다. 어떤 배경도 없는(별 볼일 없는) 젊은이가 출옥후 먹고 있던 두부였다. '두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산문집의 가치는 충분하다.
표제작의 성격이 저렇다고 해서 책이 다루는 모든 주제가 무거운 것은 아니다.「내 안의 언어사대주의 엿보기」등의 글도 있지만, 오히려 노년의 시선으로 본 잡다한 사회 현상들, 박완서 문학의 발원지인 개성 박적골과 그곳 사람들을 재현한 「개성사람 이야기」 김윤식, 박수근 등 작가가 가까이서 지켜봐온 문인과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처럼 '그녀의 삶'에 대한 글들이 주를 이룬다. 소설가 김훈은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이렇게 말했다. "삶을 통과해 나온 글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는 것"이라고. 노년'의 지혜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결코 쉽게 넘길 순 없지만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글들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