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온 몸에 휘감고 조용히 유영하는, 제주도 10분의 1도 안되는 섬에서 900여 명의 거인이 꿈을 꾼다. 그들의 언어는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만이 알아들으며, 그들의 소식은 바람결에 실려 1만 6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우리네 마음에 전해진다. 눈이 시리게 파란 이스터섬에 한달간 지낸 사진작가의 필름은 40여 통이 현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스터섬의 모아이는, 딱 그만큼의 접근을 허용하였지만 작가는 별로 섭섭해하지 않는다. 다만, 담백하고 착한 라파누이와 호들갑스럽지 않은 삶이 벌써부터 그리워질 뿐.
본문 곳곳에 아름다운 색감과 범상치 않은 풍광의 사진이 박혀 있어야 '여행서'라는 이름의 1차 생명력이 유효해진다 치면, 일단 이 책은 보통 나이는 넘기는 건강장수가 보장되는 셈. 사진작가가 쓴 여행서라니 속을 염려는 없다. 제목 탓인지 읽는 내내 파랗게 눈이 시려오게 만드는 사진들. 하늘과 바다가 내 마음 곁에 내려앉아 결국은 서울 한복판, 지하 사무실, 희뿌연 공기, 사람과 사람의 벽 사이에서 울컥, 부러움의 탄성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