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와 신전이 있던 시절, 술은 인간이 신을 만나는 영혼의 촉매제였다. 근대에 들어 인간 자신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시작되면서 술은 인간의 의식 확장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과 신의 메신저인 예술가들에게 알코올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공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버리게 하고, 광기와 불안을 세기의 걸작으로 바꿔놓기도 했던-그 취기의 경험이 예술가에게 미친 영향을 작가별 시대상과 작품의 특성들을 아울러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1부는 흔히 기인으로 불리는 작가군(랭보와 보들레르 등)을 통해 작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의 특성 때문에 종래에는 상습성 음주와 금주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을 지지한다. 2부는 난폭한 행동을 불러 일으키거나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간헐성 음주의 경우(테네시 윌리엄스, 유진 오닐 등)를, 마지막 3부는 자신을 파괴하는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인 상습성 음주와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를 에밀 졸라, 질 들뢰즈 등을 통해 다루고 있다.
각 장은 작가의 간단한 약력과 학문적 업적,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상과 유행시킨 사조 혹은 문학용어 등을 잘 짜깁기 해놓음으로써 조금 딱딱한 논문투의 문장과 만만찮은 학문적 깊이를 기분좋은 긴장감으로 읽게 한다. 귀에 익었으나 정작 괜찮은 작품 하나 맘잡고 읽어보지 못한 문학도들에게, 세기의 작가들에게 입문할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될 듯. 원서와 달리 작가들의 사진도 시원스럽게 편집해 넣어 보기좋은 책이 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