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인간의 어리석음과 본성을 낱낱이 까발린 에스파냐의 천재화가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1746-1828). 고야는 몇몇 미술작품과 귀머거리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이다. 총구 앞에서 전쟁과 폭력의 극심한 공포감을 온 얼굴로 토로해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은 미술교과서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익숙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는 그림이 그려진 19세기 초 당시 고야를 종교재판소에 서게 하였고, 이 그림은 150여 년이 지난 1969년 한국에서 성냥갑 바깥에 인쇄되어 법정에서 격렬한 음란물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듯 유명한 그림 몇 점과 눈물을 머금고 끝난 알바 공작부인과의 연애 스캔들, 귀머거리가 된 뒤에 그린 ‘유령’이 등장하는 암울한 회화 등을 통해 고야는 친숙한 화가이다. 하지만 정작 생활에 시달린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대의 고통과 부조리한 현실을 그려낸 천재 예술가로서 고야의 다양한 면모는 알려지지 못했다.
특별 애장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고야의 작품 중에서 엄선한 대표작 200여 점의 멋진 도판과 인상적인 편지 구절과 작품에 남긴 기록을 통해, 200여 년 전에 실제로 살았던 고야의 세상살이, 전쟁과 폭력에 맞닥뜨린 무력한 인간의 모습과 어리석음에 대한 참혹한 보고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성과 새로운 예술에 대한 믿음 등 ‘나약한 한 인간이자 예술가’였던 그의 면모를 고야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나지막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