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실상사 도법 스님과 변산 공동체 농사짓는 철학자 윤구병 선생이 만났다. 불경을 한글로 풀어내기 위해서다. 이들 ‘스님과 철학자’는 11명의 제자들과 함께 이 일을 시작했다. 모임의 이름은 ‘불한당’(불경을 한글로 풀어내는 모임). 불한당 당원들은 불교를 많이 아는 사람들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고, 교수와 신문 기자 출신 논술 강사, 요리 전문가와 백수 등 다양했다. 첫 번째 텍스트는 [법성게].
『화엄경』은 부처님의 깨달음 세상을 표현한 장엄하고 화려하고 방대한 경전이다. 하지만 이 경전은 부처님이 듣는 사람 귀를 생각지 않고, 깨달음의 세계 그대로를 온전히 설한 경전이라서 매우 어렵기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방대한 『화엄경』 80권을(60권 본과 40권 본도 있다) 한자 210자로 압축한 초고밀도 시(偈頌)가 있다. 신라 시대 고승 의상 대사가 쓴 [법성게]다. a[법성게]는 의상이 중국에 있을 동안 지은 책으로 당시 중국 불교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내용의 완성도와 함께 인도 불교, 중국 불교가 판을 치는 현재 상황에서 ‘한국 불교’의 핵심을 잡고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불한당이 첫 텍스트로 [법성게]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줬다.
이 책의 내용은 [법성게] 풀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불교의 문제, 깨달음의 신비화에 대한 비판, 우리말 풀이의 의미, 현대물리학과 불교 정신의 관계, 기독교와 불교 세계관의 차이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진행된 활발한 논의 내용도 포함됐다.
너와 나, 우주가 다르지 않다는 동체대비의 깨달음은, 바로 존재에 대한 앎과 직결된 것이고, 앎은 함(실천)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이 책은 주장하고 있다. [법성게]에서 나타난 불교의 세계관과 실천론은 주장과 당위가 아니라 여실지견하면 드러나는 ‘실상’이라는 것이 이 책의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