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서 상징(Symbol)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상징은 복잡하고 미묘하기 짝이 없는 세상 일들을 아주 간단하면서도 적절하게 묘사해준다. 이 놀라운 효율성이 바로 상징의 매력이다. 그러나 일단 세상에 태어난 것이 적절한 조건을 만나게 되면 무럭무럭 성장하는 자연스러운 이치에 따라, 인간에 의해 세상 빛을 보게 된 상징 역시 역사 속에서 자양을 얻어 마침내는 인간의 지배권을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다시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지난 세기의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E. Cassirer는 인간을 상징적 동물로 규정하면서, 인간 문화의 발전을 인간의 상징 사용능력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카시러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문화발전의 역사적 진행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기 인식과 그 결과로 주어지는 자유를 목표로 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면 카시러의 통찰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통해 목도하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상징들에 속박받는 모습들이다. 설사 이러한 구속과 억압이 단지 미시적인 차원의 일탈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가장 발전된 문화 속에서 산다고 여기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만약 이러한 상징 사용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자연의 체계 내에서 두드러진 존재로 만들어준 적극적인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휘황찬란한 영광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이해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예비단계이다. 그 어두운 그림자는 단순히 관념적인 속박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폭력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우르반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는 수단인 인간의 관념들이라는 에픽테토스의 말을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해명하고 있다. 나치가 아리안 족을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고 환상을 갖게 하고, 열등한 민족은 인류를 위해 제거해야 한다는 ‘사명’을 정당화시켜 준 ‘과학적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지, 2천 여 년 전 베드로가 예수에게 받은 열쇠의 권능이 어떻게 로마의 교황에게 이어졌는지 등, 저자가 독자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인류문화의 굵직한 에피소드들은 단순히 심심한 시간에 소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반성하기 위한 실마리이다. 바로 지금 우리 자신의 주변을 떠돌며, 때로는 유혹하고 때로는 억압하는 무수한 상징과 이미지들의 생산자인 인간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