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한나 아렌트, 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 칼 슈미트, 발터 벤야민, 알렉상드르 코제브,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을 포함해 그 사람들과 직간접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굳이 좌파와 우파로 나누지 않더라도, 이 지식인들은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편지와 전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사람들의 약식 전기를 한 권의 책으로 살펴보고 모든 등장인물을 묶는 인식의 지형도를 그려 보는 일,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저자는 20세기에 쓸모없게 되어버린 “지식인의 책임”이라는 말에 대해, 그리고 한 사상가의 사상과 그 사상가가 자신의 사상을 정치적으로 사용한 방식들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등장하는 사상가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공통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각자 “전제정”이라는 정치 환경을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성찰하면서 일종의 “메시아주의”라는 낭만적 대안을 처방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라인강을 사이에 둔 채 독일과 프랑스를 근거로 활동한 좌파와 우파 사상가 8명을 소개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 사상가들과 개인적으로 또는 지적으로 얽히고설킨 사상가들을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20세기 유럽의 사상(과 그것이 영미권에 미친 영향)을 아우르는 서술 지평을 확보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식인이 정치 권력에 부역하는 현상이 특정한 나라나 특정한 정치 풍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플라톤 자신의 인생 역정에도 끼여든 문제라고 보는 저자는, 이것을 지식인이 언제나 직면하게 되는 “시라쿠사의 함정”으로 이해한다. 결국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정신의 위대함은 그 속에 가동되고 있는 힘 자체가 고상한 성격을 지닐 때 비로소 세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