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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글쓴이
허균 저
출판사
펭귄클래식
출판일
2009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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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허균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란 호를 썼다. 1593년에《학산초담》을 지었고, 1596년 강릉부사였던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

1598년 중국의 장군과 사신들을 접대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중국의 종군문인 오명제에게 《조선시선》을 엮어주었으며,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에 전파케 했다. 10월 13일, 다시 병조좌랑이 되어 가을에 평안도를 다녀왔다. 1599년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기생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1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 도착해서 문집 《성소부부고》 64권을 엮었다. 11월에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왔다. 1612년 8월 9일, 큰형 허성이 죽었고 가장 가까운 벗 권필이 광해군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매맞아 죽었다.

1615년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다. 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이때 다녀온 기록을 《을병조천록》으로 남겼다. 1618년 봄, 스승 이달의 시집 《손곡집》을 간행하였다. 윤4월 7일, 남대문에다 백성들을 선동하는 흉서를 붙인 심복 하인준이 잡혀들어갔다. 17일에 허균도 기준격과 함께 옥에 갇혔다. 그의 심복들이 허균을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22일에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하였다.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허균은 결안도 없이 8월 24일에 그의 심복들과 함께 서시에서 처형당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한국 최초의 국문소설이자 한국 문학사에서 소설 시대의 문을 연 허균의 『홍길동전』
400년을 앞서 간 개혁가 허균의 자유분방한 사상을 함축한 문제적 명작


한국고소설 가운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제적 작품이다. 최초의 국문소설이고, 문제 작가 허균의 창작소설이며, 민감한 사회문제를 제기한 사회소설이라는 평가가 수식어처럼 따라다닌다.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와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융합한 내러티브 등으로 대중적 호응도를 높여 자칫 딱딱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설의 사회적 기능을 일깨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 적서 차별 문제는 조선 시대의 사회적 병폐를 지적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느 사회에서나 제기될 수 있는 신분 차별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학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비판의 대상이 적서 차별에 국한되지 않고, 추구하는 가치 또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만인 평등의 미래 사회라는 점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어와 한문을 현대적으로 번역하고, 수준 높은 작품해설과 원문 목판본을 함께 실어 현대 한국어와 비교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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