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열매』를 펼치면 풍광도 낯설고 날씨도 어정쩡하여 시각을 가늠하기 어렵고 아는 얼굴은커녕 고양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광장에, 오직 소리로, 목소리로 가득 찬 이름 없는 공간에 들어선 듯하다. 첫 문장을 읽고 첫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이 생경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소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상식을 뛰어넘는 이 소설은, ‘황금열매’라는 가상의(혹은 실재하는?) 소설을 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소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의 서사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로지 대화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축되는 소설, 그 소설 속에서 한 편의 소설은 생성하고 성장하며 소멸해간다.
어찌 보면 알맹이라곤 하나 없는 한바탕 수다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이 소설은 고난도의 심리소설이자 절묘한 무의식소설이다. 책이라는 하나의 사물, 의미를 가진 단어들로 구성된 거대한 메시지 덩어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소설 밖 독자들은 소설 속 독자들의 꿈과 몽상, 욕망과 절망, 치기와 야심, 허영심과 수치심, 내면세계의 흔들림과 의식의 변화과정을 낱낱이 훔쳐보게 된다(엿듣게 된다). 그리고 그 훔쳐보기-엿듣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소설 밖 독자들은 소설 속 독자들과 교감하며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소설 밖에서 진행되는 책읽기와 소설 안에서 진행되는 책읽기를 비교해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많은 허위의식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낯선 것들을 거부하고 익숙한 것들을 과대포장하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세태며 시류에 휩쓸려 우왕좌왕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 나탈리 사로트는 ‘황금열매’라는 소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눈앞에 보고 있는 이 노란색 표지의『황금열매』라는 소설을 경계-매개-출발점으로 삼아, 우리 인간 의식의 그 무구한 확고부동함과 한없는 가벼움을 동시적으로, 시각적으로, 의미론적으로, 실제적으로 재현하는데 성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