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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허생전, 양반전 외
글쓴이
김시습 외 1명
출판사
하서
출판일
2009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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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김시습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등을 사용하였다. 선덕(宣德) 10년 을묘(乙卯: 세종 17년, 1435)에 서울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문자 이해 및 구사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 장안의 화제였다. 태어나서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다섯 살 적에 세종이 궁궐 안으로 불러들이어 운자(韻字)를 불러 주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짓게 하였다. 5세에 『대학』(大學)에 통달하고 글도 잘 지으니, 신동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뒷날 어릴 적에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사랑을 받은 사실을 시를 통해 회고하곤 했다. 하지만 유년기의 천재성과 이로 인한 주변의 칭찬은 김시습의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성은 비정상성과 통하고, 유년기의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색하기 십상이며, 그 자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비례하지 않는다. 뒷날 그는 친지와 이웃의 넘치는 칭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21세 때 삼각산 속에서 글을 읽고 있다가 단종이 손위(遜位)하였다는 말을 듣자 문을 닫고서 나오지 아니한 지 3일 만에 크게 통곡하면서 책을 불태워 버리고 미친 듯 더러운 뒷간에 빠졌다가 그곳에서 도망하여 행적을 불문(佛門)에 붙이고 여러 번 그 호를 바꾸었다. 미친 듯 시를 읊으며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며 한 세상을 희롱하였다. 비록 세상을 선문(禪門)에 도피하였다 하여도 불법을 받들지 아니하니 세상에서 미친 중으로 그를 지목하게 되었다.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 1458년, 24세에 승려 행색으로 관서 여행을 떠났다. 이후 관동과 호남을 유람하고, 경주와 서울에 안착한 시기도 있지만 방랑자로 긴 세월을 보냈다. “매월이라 당(堂)에다 이름한 것은 금오 매월이란 뜻을 취한 것이다”고 한다. 쉰아홉 되던 해 봄날,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비 내리는 가운데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2,200여 편의 시와 함께 정치 견해를 밝힌 산문들이 『매월당집』에 실려 있고, 소설 『만복사의 윷놀이』, 『이생과 최랑』, 『부벽정의 달맞이』, 『꿈에 본 남염부주』, 『용궁의 상량 잔치』가 『금오신화』에 전한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조선시대 소설 문학의 양대 산맥 김시습, 박지원을 만나다!
최초의 전기소설 『금오신화』 대표 풍자소설 「허생전」「호질」


조선 소설 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김시습과 박지원의 대표적인 소설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 책의 서두에는 김시습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집 『금오신화』에 실린 작품으로 현재 전해지고 있는 「만복사저포기」「이생규장전」「취유부벽정기」「남염부주지」「용궁부연록」등을 실었다.

위의『금오신화』 다섯 작품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은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한국 사람을 등장 인물로 했다는 점이다. 또한 특이한 결말 처리 방식이나 유려한 문어체와 시에 의해 대상이 서정적으로 미화되고 단편 소설적인 정교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원의「허생전」과「양반전」은 각각『열하일기』와 『연암집』에 실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허생전」은 근대 자본주의 모습과 매점매석의 부당성에 대해 나타나있으면서, 북학론을 주장하는 작가가 북벌론을 주장하는 이완을 통해 탁상공론식 북벌론의 허구를 꼬집는 풍자소설이다. 또 「양반전」의 경우, 한문 단편소설로 양반의 무능력과 부패상을 폭로함과 동시에 서리들의 농간과 관료들의 횡포를 풍자와 해학으로 고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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