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는 그 시기 자체가 모순이다. 부모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관심과 돌봄을 그리워하고,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 모습을 닮아 간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개인의 문제로 인한 고뇌가 공존하는 시기, 이 책의 화자 조너선은 그런 청소년들을 대변한다. 조너선은 명문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 사이에도 힘의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은 부모의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한다.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도시, 줄 앞에 서기 위해 돈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들. 조너선은 그 앞에만 서면 현기증을 느낀다.
하지만 조너선 역시 그 도시와 닮아 있다. 노숙자, 노점 상인, 같은 반의 불량학생을 ‘뒤처진’ 이들로 취급하고 상대하기를 꺼린다. 반면 문학 선생을 꼴통이라 여기면서도 낙제를 면하기 위해 비위 맞추기를 선택한다. 이 모습은 외적 조건으로 평가받기를 싫어하면서도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애들의 무리에 끼고 싶어하는 아이들, 입시공화국의 현실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그 속에 안주하는 아이들의 면면과 닿아 있다.
청소년기 아이들의 모습을 통찰력 있게 포착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는 찰리의 입을 빌려, 생기를 잃은 채 ‘안전’만을 추구하는 이 세상의 모든 조너선에게 묻는다.
“근데 그게 정말 잘 사는 걸까? 그렇게 살아서 좋은 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