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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글쓴이
퇴계 이황 외 1명
출판사
소나무
출판일
2003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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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퇴계 이황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책 소개

분야인문
한 마디로 너무나 좋은 책이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편지 모음. 조선조의 걸출한 인물이며, 유명한 사단칠정 논쟁의 주역들이 주고 받은 편지가 이렇게 읽기 쉬운 책으로 나오니 무척 반갑다. 이들의 편지는 철학이나 국문학 관계자들의 연구 논문에서나 인용될 뿐,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출간된 적은 없었다. 과 이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국역총서 시리즈에 끼어있긴 하지만, 번역이 예스러워 일반인이 읽기에는 불편하고, 또 편지만이 아닌 다른 글까지 모두 포함된 문집이라 역시 무겁다. 하지만 이 책은 보기 쉽고 읽기 쉬운, 그러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은 가작이다.

책을 펼치니 화면이 단정하고 편안하다. 맨 앞으로 가서 목차를 살핀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 중에서 일상적인 얘기를 담은 편지들이 1부를 이루고 학문적인 쟁점을 다룬 것은 2부에 실었다. 분량은 1부가 2/3, 2부가 1/3이다. 목차만 살펴도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고 아꼈는지 보인다. 성균관 대사성이라는, 요즘으로 치면 서울대 총장 쯤에 해당하는, 높은 직책에 있던 58세의 이황과 이제 막 과거에 합격한 32살의 청년 기대승이 이처럼 나이와 공간적 한계를 넘어 13년간이나 깊은 영혼의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경이롭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한시의 한 구절 같은 목차의 소제목들을 지나 본문으로 접어든다. 깔끔한 편집에 군데군데 붉은 색 잉크가 포인트를 이루고 있다. 각주를 표시한 숫자와 본문 끝에 찍은 도장이 붉은 색이다. 사진에 조예가 깊은 편집자가 특별히 붉은 색 잉크를 써서 화면에 포인트를 주었다한다. 매력적이다.

드디어 첫 번째 편지, 편지의 제목은 라 하였다. 본문 끝에 퇴계의 도장이 찍혀있으니 퇴계의 편지다. 기대승이 과거에 급제한 그 해 겨울에 보낸 편지다. 자기보다 나이가 26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이토록 겸손하고 삼가하는 문장을 쓴 퇴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장에서 고귀한 품격이 느껴진다. 게다가 번역 또한 참으로 빼어나다. 번역자가 얼마나 깊은 애정과 존경을 담아 번역했는지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는 그러한 번역이다. 방정하되 부드럽고 유장하되 흐트러짐이 없다.

1부는 5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으며 연대순에 따랐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의 감회에서부터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처세의 어려움, 시에 대한 감상, 관직과 벼슬에 대한 생각, 질병과 운명, 귀향과 죽음 등 온갖 주제에 대해 서로의 심중을 털어놓는다. 조심하는가 하면 아쉬워한다. 2부는 학문을 논한 편지들로서 그 유명한 사단칠정에 대한 논변이나, 태극의 개념, 상례와 제례, 기타 왕실의 전례 등을 논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갈명을 실었다. 책 뒤에는 연표와 두 사람에 대한 소개도 들어있다.

이 책은 파묻혀있던 옛 문헌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어 출간 의의가 크고, 내용이 담고 있는 뜻이 높아 배울 바가 많다. 더불어 인간의 만남이란 살과 살의 만남이 아니라 영혼의 만남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어 또한 값지다. 인터넷 서점 편집자는 매일 수십 권의 책에 치어살지만 이런 책을 만나는 보람에 피곤을 잊는다.

* 를 누르면 책 안을 볼 수 있습니다. 화질이 조금 떨어지는데 실제의 편집상태나 인쇄 상태는 훌륭합니다.

--- 허순용(sellavy@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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