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찔한 이야기에 걸맞은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마루야마 겐지가 온몸을 갈아 만든 첫 역사소설!
잔인하고 화려한 방랑, 혹독하고 정 넘치는 복수의 여로
“오직 원고료만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며 쓰고 싶은 글만 쓰겠다”는 그의 뚝심어린 문학적 고집이 마침내 역사소설에 이르렀다. 사설시조를 읊조리는 듯한 특이한 문체, 굽이치는 강물처럼 파란만장한 사건의 전개, 마치 생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비주얼한 묘사, 그리고 혼란 속에서도 생의 활력이 넘쳐나던 무로마치 시대의 비극적 드라마까지. 오연하고 결곡한 마루야마 겐지의 작가정신을 오롯이 보여주는 대작이다.
주인공은 80세 노인이다. 한평생 오직 한 작품 「일월산수도병풍」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붓는 노인. 그는 이미 생의 희로애락을 초탈한 양 언덕배기에서 먼 바다를 말없이 내려다본다. 그의 시선을 좇아 소설은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 한 남자아이의 불행한 탄생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산적들이 산속의 고찰 야쿠오지(藥王寺)를 침입하여 잔혹한 살육을 벌인다. 그리고 임신 중인 한 여인이 산적에게 납치된다. 승려의 아내인 그녀는 끌려가던 길에 말에서 떨어지며 절명의 순간 남자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불타버린 숲에서 곰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남는다. 버려진 아이는 일본도를 만드는 대장장이가 주워 소중히 키운다. 어느 날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소년은 스스로 ‘야쿠오지 무묘마루(無名丸)’, 즉 ‘이름 없는 자’라 이름 짓고, 자신이 만든 명도(名刀) ‘풀의 칼’과 양아버지가 만든 ‘별의 칼’을 가슴에 품은 채 복수를 위한 방랑길에 오르는데...
한 시대의 온갖 계급과 계층을 넘나들며 주유하는 무묘마루의 거침없는 행보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되묻게 한다. 결국 소설은 마루야마가 던진 하나의 질문 “사람이 사람인 소이(所以)는 무엇이냐”에서 출발해 이에 대한 쉽지 않은 해답을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