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버린 아고라, '사적 영역'이 지배하는 세계
안정적이고 견고한 '고체'와 달리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가진 '액체' 개념에 기초하여, '무겁고' '고체적이고' '예측/통제가 가능한' 근대에서 '가볍고' '액체적이고'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근대로 이동해왔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액체 근대'를 시작으로 근대성에 대한 지속적인 작업을 한 저자의 가장 핵심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해방, 개인성, 시/공간, 일, 공동체. 이 다섯 가지 인간 조건을 둘러싼 주요 개념을 전면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있다.
오늘날 불안정성은 도처에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개인화는 전례 없는 자유를 주었지만, 자유의 결과와 대면해야 하는 전례 없는 과제 역시 남겼다. 과도한 유동성 속에서 오늘날 노동자들은 직장에 충성하지 않으며, 삶의 목표를 직장의 미래 속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불확정성, 불안정성, 불안은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퍼진 삶의 조건들의 특색이다. 그리고 가볍고, 소비자 친화적인 자본주의는 비위를 맞추며 유혹하고 꼬드길 뿐이다. 다만 파멸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너에게 있다. 자유로운 주체인 네가 자유롭게 행동한 결과이다.
과거의 '고체' 자본주의 세계에 '정의롭고 올바른 사회'를 목표로 노력을 기울이는 지도자가 존재했다면, '액체 근대' 세계에서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는 마가렛 대처의 악명 높은 구호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사적으로 추구되던 문제들을 개인적 관심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닌 더 넓은 차원의 공적 관심사로 바꿔내고, 지금까지 생활정치가 떠맡아오던 것들이 다시 대문자 '정치'의 장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