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 따르면 미국 대학은 그리스도교적 고전주의, 세속적 인문주의, 학술연구적 이상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왔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가지는 어찌됐든 ‘삶의 문제’를 학문의 핵심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현재 모든 대학에 지배적인 학술연구적 이상은 ‘삶의 문제’를 무의미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대학에서 다룰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편화시켰다고 크론먼은 진단한다. 그 원인은 1차적으로 인문학 담당주체들의 인문학에 대한 확신부족과 정치적 공정성의 논리 및 학술연구적 이상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 있다. 그리하여 크론먼은 인문학 담당주체들이 ‘삶의 문제’에 답하는 인문학의 역할에 다시금 주목하고, 학술연구적 경향성의 적절한 수용을 통해 대학내에서 인문학이 담당해야할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때, 삶의 문제가 실종되어버린 대학의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