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된 영·정조대의 실학과 북학사상 연구는, 17·18세기 사상사 연구를 더욱 풍성하게 했고 학계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연구 성과물들을 축적해왔다. 이에 비해 18·19세기 조선 성리학은 학계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직까지 미답의 연구 영역으로 남아 있다. 18·19세기 사상사가 연구자들의 관심 영역에서 배제되어온 것은, 실학과 북학파의 활동에서 근대의 맹아를 찾으려고 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의 삶과 행동이 일제 강점기 이후 조선의 근대적 발전을 저해했다는 부정적 시각이 학계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는 소멸되고 잊혀져 온 한국학사의 한 부분인 18·19세기를 되살리는 작업에 연구자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18·19세기 史에 대한 학계의 관심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이 책은 근대로의 이행기였던 19세기에 존재한 기호와 영남 유림의 사상과 활동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연구 논저로, 조선 성리학의 성과가 집성되어 있음에도 오랫동안 연구에서 철저히 소외되어온 18·19세기 조선 사상사를 종합적인 시각으로 분석·복원해내고 있는 역작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계에는 매우 다양한 인물과 학설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학단은 충청도와 경기도를 근거지로 한 이이(李珥)·성혼(成渾) 학파인 기호유림과 안동을 중심으로 한 퇴계(退溪)학파인 영남유림이다. 기호와 영남유림은 각각 18세기 이후 '호락논변'이나 '병호시비' 등의 논쟁을 기점으로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다양한 학파로 분기되고, 개항 이후 반외세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지역성과 당파성을 극복하고 통합되기까지 다양한 학술 활동을 통해 사상적 변모 과정을 거치게 된다. 「기호학파의 사상과 활동」을 비롯하여 이 책에 묶여 있는 10편의 논문은 기호와 영남유림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들과 이들이 이끈 학단, 그리고 각 학단의 분기와 통합 과정 속에서 조선 후기 사상사가 어떻게 변모되어가는지를 추적·조망하고 있다. 방대한 사료에 바탕한 치밀하고 실증적인 연구로 조선 후기 사상사의 전체적인 지형을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앞으로 조선 후기 사상사 연구의 지침서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