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CD 속지에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LP 미니어쳐 시리즈로 나온 덕에 밴드가 쓴 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40년 전 이 밴드가 그렇게 요구한대로 크게 들으면서 차를 몰았다. 작년에 내 허리를 부러뜨리면서 바꾼 차는 딴 건 몰라도 빵빵한 스테레오 시스템에 비싼 스피커 덕분에 좋은 소리를 뽑아내 준다. (밖으론 부릴 허세는 다 부리면서도) 문명과 물질에 어줍잖은 냉소주의를 유지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도 거부할 수 없었던 결론은 오디오 시스템 만큼은 무조건 돈 값 한다는 것이었다. 처바르면 처바르는 대로 귀는 즐겁다. 무조건 정비례로.

오늘 아침에도 이 앨범을 들으면서 차를 몰았는데 눈이 살짝 내리는 축축한 서강대교를 건널 때 내 왼쪽 차선 뒤에서 갑자기 "빵!빵!!"하는 소리에 놀라서 흠칫했다. 진짜가 아니라 세 번째 곡 "Country Honk"가 시작할 때 나오는 클락션 효과음이었지만 크게 들으니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진짜인 줄 알고 속을 수 밖에 없었다.

1968이나 1969년 런던에서 롤링 스톤즈는 이 노래를 녹음하면서 "장난삼아서" 아니면 "진지하게" 그 클락션 소리를 노래에 넣었겠지만 그로부터 40년이나 지나서도 동양의 한 나라에 어떤 아저씨가 차를 타고 가면서 그 클락션 소리에 (노래를 들을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랄 줄 상상이나 했을까. 어찌 클락션 소리 뿐일까, 앨범을 쭉 들으면서 노래 노래마다 크고 작은 감동을 즐기고 있었으니,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게 하는 게 음악의 힘이고 레코딩이라는 기술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앨범은 제대로 된 히트곡 하나 없었지만 이런 앨범이야말로 들으면 들을 수록 묻어나는 맛이 있다. 스톤즈 답게 질펀하고, 퇴폐적이며 반항적이다. 차별적인 가사도 있지만 스톤즈는 내숭을 싫어한다. 모범생 비틀즈의 Let It Be를 비꼬는 듯한 Let It Bleed라는 제목 역시 마음에 든다. 이래서 내가 비틀즈 보다는 스톤즈에게 더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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