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자가 읽고, 읽는 자가 쓰는, 이중 나선 위에 놓인 텍스트 『디포』
쓰는 자와 읽는 자 사이에, 소설이 놓여 있다. 누가 쓰고 누가 읽는가? 우리는 쓰는 행위로써, ‘씀’을 완성할 수 있는가? ‘디포’와 함께 마주하는 이 질문은 공허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엉덩이로 이름을 쓰듯” 견뎌야 하는 치욕을 견뎌낸 자의 텍스트가 ‘이름’도 아니고 ‘이름 아닌 것’도 아니듯이, 이 소설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읽히면서 동시에 지워진다.
난처에 은거한 소설가의 숙명 혹은 이야기의 숙명
윤경희 평론가는 김종호의 『디포』가 분명 은둔자 서사의 계보를 잇는다고 이해한다. 그는 이 소설이 “은둔하는 인간형을 거듭 불러내고 고쳐 쓰는 전략을 채택하면서 소설을 의태하려” 하며 “소설의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주소지 없는 난처를 개간하려” 한다고 평가한다. 이는 실제로 이 작품집이 소설가 스스로 서울 생활을 접고 전라남도 곡성의 시골에 안착한 뒤, 밤의 저수지를 산책하며 써내려간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장의 곡진함이나, 작품의 감각적 무게가 만만치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