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용기 그리고 자유의 승리”
숭고한 정의의 실천자 스코필드를 사랑한
세브란스인들의 전상서前上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石虎弼, 1889~1970)는 1919년 3월 1일, 한국의 거국적인 독립운동에 협력하고 지원한 유일한 외국인으로서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한, ‘진정한 한국인’이다. 그는 몸과 마음으로 한국을 사랑한 엄격한 스승이자, 따듯한 선의를 베푼 청빈한 선교사이자,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한 촉망받는 학자이자, 정의를 실천한 참된 지식인이었다.
스코필드는 영국계 캐나다인으로, 1916년 11월 내한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 강의를 맡게 되면서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으로 있던 에비슨(O. R. Avison)이 초청하여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로서 한국에 오게 된다. 스코필드는 한국에 방문한 순간부터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 하에 있던 한국인을 동정하고, 또 깊은 마음으로 사랑했다.
1919년 3월 1일, 역사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난 날 스코필드는 한국에서 벌어진 참혹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평화적인 독립운동을 무자비한 폭력과 잔혹한 학살로 진압한 일제의 만행을 사진에 담아, 일제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실상을 폭로하고자 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일제의 반감을 사 불이익을 받고, 쫓기듯 한국을 떠나야 했다.
그 후 모국에서 한국을 그리며 살던 스코필드 교수는 모교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다시 해방된 대한민국을 찾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스코필드는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로 부임하였고, 젊은 시절 3?1운동에 기꺼이 협력했던 그 정의감을 여전히 간직한 채 많은 청년들의 길잡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