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없는 남자 이야기 ㅡ 김경희

ㅡ 다 사라져버렸어 . 좋은 날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

ㅡ본문 41 쪽에서 : 김경희 작가 편 : 코 없는 남자의 이야기 ㅡ

이번 주 내내 거실로 안방으로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 단편이라 금방 소화가 되겠거니 여겼는데 , 소재는 몹시 흥미로운데도 , 다만 미치도록 빨려들진 못하고 있었다 . 뭔가 덜커덕 제동처럼 걸린다 .

그 와중에 저 문장 , 한 남자가 내뱉은 말만이 말풍선처럼 내 머리 위에 둥실 ~ 하고 걸려서는 이리저리 빵처러 부풀어 좁은 집안 어딜가나 이 모서리 저 모서리에 찍찍 닿고 부딪히는 좀 엿같은 기분 .
상상의 이미지 속 말풍선이라 곧 찌그러들지도 않는 채 그저 붕붕 떠 다니며 성가신게 꼭 날벌레처럼 시야가 괴롭다 .

좋은 날이 있기는 했나 ? 하는 물음에 , 그러게 그러네 ... 그러니깐 , 내 말이 ...그래가면서 ,

마흔 일곱의 나이란 어떤 기분일까 ? 서서히 삶에서 중심이 스스로에게가 아닌 밖으로 자식에게로 사회라는 커단 몸체로 , 자신이 아닌 낯선 사람에게로 희망이란 집이 , 짐이 , 옮겨지는 그 같은 기분일까 ? 아직 모르겠다 . 실체할 수 없는 감각인 것이다 . 나이란 것은 가만 보면 ...

가슴을 잃고 납작해진다는 건 어떨까 ? 이전에 나는 내 몸의 하나이던 자궁과 난소에 대해서도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지 않을까 했던 적이 있는데 정작 그것이 사라지고 난 후엔 뭐라 표현하기 힘든 상실감이 제 집 찾아오듯 절로 잦아드는 것을 느끼곤 아, 아 , 없어도~ 따위의 말이 그저 허세와 내 오만에 더한 오기였을 뿐이란 걸 깨달았었다 . 그러니 가슴 한 쪽 덜컥 베어내 버리고 말면 , 아아 어깨 한 쪽이 가벼워졌어 ㅡ하지 못하리란 건 너무 분명해 보인다 .

가슴을 잃고 지독한 후각발달로 주위에 떠도는 냄새의 모든 게 지독히 성가시기만 한 여자와 그 여자의 남편으로 아내가 가슴을 잃었듯 냄새를 맡는 기관인 코 , 후각을 잃은 남자가 나온다 . 이 남자는 아내가 지독해 ! 지독해 ! 할 때마다 향이 짙은 코롱을 목욕제로 쓰며 몸을 닳쿤다 . 제발 존재하는 냄새들은 씻겨져 내려가란 듯이 ... 제발 냄새야 , 사라져줘 하듯이 .

그래서 냄새가 사라지는 대신 냄새를 맡는 후각이 사라졌다 . 그렇다면 맡을 수 없는 냄새는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여전히 그는 맡지도 못하는 냄새로 고통을 치른다 . 세상의 모든 맛이 사라진 것만 같은 고통 ㅡ 아내와는 다른 이유로 오는 고통 .

장식으로 요란했던 식사 그리고 등장한 후식처럼 남자에게 곁을 주는 한 여자 .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충실하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개 , 사모예드를 닮은 듯한 여자 예나가 그의 몸에서 중년임에도 좋은 향기가 난다며 그를 이끈다 . 자신이 잠시 머무는 호텔 달 6호실로 ... 남자는 늘 , 이번까지만 이번만 하며 주기적으로 그녀의 방을 찾아들고 그런 관계도 예나가 북극 또는 남극이란 극지로 냄새 없는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남자는 그제야 아내의 호출음에 귀 기울이고 들어가야지 , 난 말 잘듣는 남자잖아 . 라고 한다 .

아내는 이제 돌아온 남자에게서 달 6호실 냄새가 아닌 것을 맡고 안도하게 될까 ? 남자는 여자가 그토록 집요하게 맡았던 낯선 곳의 향이 다름 아닌 예나로부터 온 자유의 냄새였다는 걸 알기는 할까 ?

아내의 상처나 남편의 상처에 대해 이 소설은 눈 쌓인 지방 특유의 톡하고 맵싸한 냄새만을 가로채 표현해놓은 지라 , 후각이 예민하지 않다면 도중에 길을 잃기가 쉽겠구나 ㅡ 한다 . 충실한 개 사모예드가 내게는 없으므로 ,

그 즈음에야 히스테릭이 넘치던 아내의 독한 말들의 모양이 다시 한 번 되새겨지면서 , 아내는 두려움이란 냄새를 맡고 있었던 거구나 하고 알게된다 .

오전에 나는 한 페친( 정은우 작가)의 글에서 그 비슷한 두려움에 관한 글을 읽었다 . 어떻게 12년이나 회사를 다닐 수 있었느냔 후배의 말에 허세를 다 빼고 , 그저 굶게 될까 두려웠다는 그의 말에 , 그 두려움이
소설 속 남자가, 또는 아내가 겪는 모호한 두려움과 상실의 다른 감각이 아니었을까 ㅡ 싶어진 거다 .

그러자 두둥실 부풀어 나를 성가시게 한 말풍선이 투명해지며 서서히 사그러들었다 . 두려움이 제 몸을 키우게 하면 , 결국 그 두려움에 뭔가를 내 주어야한다는 생각도 함께 ㅡ 아, 내 코는 아직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