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이라는 말은 견디는 자에게 알맞은 말이 아닐까 싶다. 시를 쓴다는 것 또한 이 삶 속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견딤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식물성이라는 말이 수동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에 대한 성찰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만큼의 나의 불안, 그럼에도 지금 여기를 지키는 것, 견뎌내는 것, 그런 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언젠가 어느 지점, 어느 끝에서 꽃을 피울 것인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 그리하여 한없이 투명해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김대봉 시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식물성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 이승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