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녀가 처음 쓴 소설로 등단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녀가 음악을 듣는 습관이다. 아주 오래 전 읽은 글 속에서 배수아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자 할 때는 집에 홀로 있는 때를 틈타 알몸인 채로 듣는다고 했다.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알몸인 채로 누워 헨델의 메시아를 듣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그리며 전율했다. 배수아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배수아의 장편소설이 나왔다는 말과 함께 대단하다는 평을 같이 들었다. 이십 년도 더 전에 잠깐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에 쏟아지는 칭찬(대중이나 언론이 아닌 개인) 에 살짝 궁금해졌다. 더 이상 범인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더욱 궁금했다. 그리고 신작 ‘북쪽거실’을 펼치면서 생각했던 것 보다 난해하지 않음에 안도했다.

해설을 쓴 평론가 김형중은 이 책에 대해 ‘사력을 다해 읽거나, 혹은 가급적 이른 시기에 읽기를 포기해야 할 책. 한국문학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실험 정신으로 유명한 문제작이 되거나, 독자라고는 몇몇 평론가들과 운 없는 다독 시민 몇과 소수의 문창과 학생들밖에는 갖지 못하게 될 저주받은 책이 되거나 할 수 있도록.’ 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건 좀 심한 오버다. ‘북쪽거실’은 그렇게 대단하게 접근하기 어려운 책도 아니며 불세출의 명작도 아니다. 자의식 과잉의 작가가 세상을 향해 내뱉는 독설쯤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다. 그런데 그 독설이 에스프레소나 99% 카카오 성분을 함유한 다크초콜릿처럼 특정인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꿈속에서 흘리는 너의 눈물은 하나의 엄청나게 커다란 보랏빛 방울로, 네 얼굴과 몸을 관통하여 하늘 전체로 퍼져 나간다. 거대한 보랏빛 백조가 네 눈동자로 들어가, 제국의 깃발처럼 펄럭이는 보랏빛 날개로 너를 집어 삼킨다.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천지는 지평선 가득 오직 보랏빛 황혼이며, 너는 그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면서 허공 높은 곳에서 너울 거리고, 그러는 한편 그 어떤 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을 만큼 깊은 감정이 깃들인 태도로 편지를 낭독하는데, 물론 나는 여전히 들을 수 없고, 그사이 황혼과 눈물의 몸인 숭고한 보랏빛 백조는 서서히 너를 잡아먹고 있다.’ -184p

이건 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꿈이고 그런 꿈을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배수아는 위의 인용처럼 소설을 끌고 나간다. 그럼에도 감각적인 문장은 가독성을 떨어트리지 않고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게 한다. 여주인공 수니가 스스로를 수용소에 유폐시킨 것과 배수아가 남들이 알아먹기 어려운 내용의 소설을 쓰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두 가지 행동 모두 ‘단절’을 꾀하는 행동이다. 어느 날 불현듯 관계를 견디기 어려워진 수니 또는 배수아가 단절을 선택하게 된 과정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은 관계를 단절하면 할수록 이해 받고 싶은 욕구가 더욱 증가하는 법이다. 결국 책의 말미 4장 ‘북쪽 거실에서 온 여인’에서 배수아는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가에 대해서 강변한다.

1장부터 3장까지가 수니의 행동이라면 4장은 수니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또는 배수아가 왜 이런 책을 쓸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가득하다. 덕분에 어느 정도 수니 또는 작가의 내면을 이해했지만 소설로서의 ‘북쪽거실’에는 실망했다. 소설이 소설로서 끝을 내기 위해서는 단절로 끝을 냈어야 했다. 벙어리 여배우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망명자가 아닌 영웅으로 태어나게 되리라 희망하는 수니의 모습은 무엇인가. 사랑 받고 싶은 열망이다.

어떤 형태로 글을 쓰던지 모든 작가들은 사랑 받고 싶다. 그런 배수아의 욕망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토록 오만한 자의식을 뽐내다 마지막에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식의 말은 구차하게 들린다. 끝까지 남들의 이해 따위는 바라지 않는 것이 마땅했다. 어차피 에스프레소는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지독한 커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