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그저 한갓 피어올랐다가 사라질 운명의 흔적과 같은 것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고유의 구성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사건들과 허접한 일상들 가운데 시는 거의 드물게 질서의 공간을 구축한다. 변화무쌍한 현실과 숱하게 토해지는 말들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고유의 음색과 짜임을 지닌 시들이 희귀하게도 우리의 의식을 충격한다. 우리의 의식은 비로소 말들이 이루어낸 안온한 질서 속에 접속되어 이동을 멈추고 고요히 시와 만난다. 시가 의식을 충격하면서 이루어진 조우의 순간들은 즐거움과 인식의 공간이 되었다.? 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의미도 논리도 아니고 그것이 발휘하는 에너지의 질과 양이다. 그것이 말을 거는 순간의, 상황의, 사태의 성질이 시에 관한 호불호를 가름한다. 평론가가 지닌 의식의 주름과 밀도가 시가 지닌 고유의 공간과 만나 때로 그것은 쾌가 되거나 불쾌가 되고 호가 되거나 불호가 된다. 만남은 모두 상대적이다. 마찬가지로 시를 포함하여 인간 존재 모두 고유의 체질을 지닌 상대적인 공간이 된다. 이것을 곧 위상공간(topological space)이라 부를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위상(位相)적 성질을 띤 공간이다. 각 개체들의 상대성과 위상성을 말하는 것은 시가 지향하는 절대성에 관해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굴곡으로 가득 차며 혼돈으로 일그러져 있는 와중에서 시는 그 험한 카오스를 가로질러 고요와 안녕의 세계를 지향한다. 모든 것이 우연으로 불안정하고 일회적일 때 시는 무질서 속에서 사금 조각 같은 진리를 캐내고자 하는 것이다. 무위한 시의 이런 행위들이 역시 덧없이 사라질 것들이나 그것들은 상대적인 만남들 가운데서 빛으로 타오르고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 그 환한 반짝임들은 혼돈에 처해 있는 모든 존재들의 꿈이겠거니와 시가 보태는 빛들에 이끌려 우리의 미래가 조금씩 그러나 환하게 열리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