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손자이자, 사도 세자의 아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극복하고, 성군으로 자라나 탕평책으로 정국을 안정시키고, 문예 부흥 정책으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개혁 군주. 우리는 정조를 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조의 라이벌이었던 정후겸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사도 세자의 동생, 화완 옹주의 양자인 정후겸은 정조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던 무리의 두뇌 역할을 하던 자다. 정조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는, 그러나 사실 정조 이산의 어릴 적 동무였다. 『초정리 편지』때부터 꾸준히 역사 이야기를 써온 배유안은 정조와 정후겸, 두 소년의 발자국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 발견한다. 옹주의 양자로 궁에 들어가 세손이었던 정조의 동무가 되나, 후에 그 반대편에 서 정조의 라이벌이 된 정후겸의 기이한 인생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러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시기와 질투로 우정을 등지고 스스로를 불행으로 가닿게 한 정후겸의 내면을 본 뒤였다.
정후겸은 왜 옛 동무였던 정조의 반대편에 섰을까. 작가는 그 실타래를 쥔 채, 250여 년 전 세자와 세손이 머물던 창경궁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정후겸의 어린 시절을 마주한 우리는, 인간 정후겸을 알아간다. 역사는 정조를 선왕으로, 정후겸을 악인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작가는 역사의 승리자인 철인 같은 정조가 아니라, 끝없이 시기하고 끝없는 욕심을 부린 정후겸의 이야기를 한다. 그에게서, 감추고 싶은 나약함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