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창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매진 드라마 톨로지의 첫번째 책으로, 하일지·정영문·서준환·김경주 네 작가의 4인 4색 희곡작품을 담았다. 희곡은 시나 소설에 밀려, 문학이라는 장르피라미드에서 하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최근에는 작가들이 희곡 쓰기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희곡도 여러 가지 문학적 표현의 영역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한 가운데, 새로운 표현에 도전하면서 자신만의 시대 인식을 기반으로 해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이 책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희곡'이라는 다양한 질감의 글쓰기에 도전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네 작가의 다양한 희곡을 동시에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하일지의 작품 〈파도를 타고〉는 국가주의와 부조리한 현실이 싫어서 한국 땅을 떠나 망망대해를 떠도는 한 가족의 우스꽝스럽고 애달픈 표류기이며, 정영문의 〈당나귀들〉은 적군이 침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왕이 도주해 버린 가상의 왕국에서, 한 나라의 방위를 책임진 장군·신하·학자가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리더십이 실종한 한국의 정치를 연상하게 한다. 서준환의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는 성적 판타지를 파는 섹스숍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정치적 층위, 재현의 층위, 성별의 층위, 오브제의 층위 등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김경주의 〈블랙박스〉는 기내라는 극소화된 무대에서 물방울, 물웅덩이, 푸르고 비린 냄새, 떠다니는 눈, 교미 중인 구름 같은 비시각적이고 공감각적인 요소를 한껏 동원해서 독자와 관객들의 공간적 상상력을 우주로 넓혀 놓는다.